저절로 환자가 되다

좀비와 로봇

by 오순

두어 달째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위에 가스가 너무 차서 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니 저절로 환자가 된다. 예약한 번호를 등록하라는 키오스크기기도 환자명으로 나온다. ‘나 환자 아닌데 뭘 잘못 눌렀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혼란이 일어났다. 그 순간 기계치처럼 기기 앞에서 당황하였다.


안내원에게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했으나 다른 환자들 돕느라고 여념이 없다. 할 수 없이 예약번호를 한 번 입력해 보니 내 정보가 뜬다. 확인을 터치하니 도착했다는 인증 정보가 출력되어 나온다. 그와 동시에 병원 시스템에 내가 도착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도착출력물을 들고 예약한 진료실 앞 소파에서 대기하였다. 뭔가 도움을 받아야만 될 것 같아 두리번거린다. 그 출력물에 쓰여있는 대로 읽어 보고 기다리면 될 것을 간호사에게 재차 확인한다. 분명 올 때까지만 해도 건강하고 정상이었는데 병원에 들어서니 환자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지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진료상담이 지체되어 예약시간보다 이십여 분을 더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이 차츰차츰 기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정신 차리려고 해도 아주 무력한 기분이 든다. 모두들 자기들만의 병명과 진료지를 들고 기다린다. 1번, 2번, 3번, 4번 진료실 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환자들이 들어가고 나간다. 우측 게시판에는 대기환자들이 수시로 변동되어 떴다 사라졌다 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아픈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의사와 환자 사이에 그 어떤 친밀감을 찾아볼 수 없다. 의사는 병만 보고 환자는 치료만 본다. 중간에 간호사는 업무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분주할 뿐이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입력된 대로 일만 하는 감정 없는 로봇 같다. 환자들은 뇌가 작동하지 않는 좀비 같다. 그중 유난히 나는 아주 나약한 좀비 같다. 병원 안에서는 모두 다 인격이 없다. 간혹 불만을 가진 환자가 불만을 터뜨리거나 조금 큰소리로 항의할 때만 그 사람만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1시간이 지나고 더 지나면 아예 녹아 없어질 것 같다. 다행히 2시간이 채 되기 전에 진료와 수납과 처방전 출력이 끝나 병원을 나왔다. 병원을 나오는 순간 바깥공기가 다르다. 납치라도 당한 것 마냥 다른 세상에 갇혔다 탈출한 것 같다.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서 집으로 왔다.


기운은 없지만 집에 오니 살 것 같다. 냉장고를 뒤져 먹을 것을 꺼내 마구 흡입한다. 모든 것이 엄청 맛나다. 기운도 나고 살 것 같다. 한숨 자야겠다. 푹 자고 나면 나로 돌아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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