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는 호구가 되기 전까지만

자신으로 있어 주기

by 오순

꿋꿋하기

자신으로 있어주기

나는 나이어야 하기에

타인이 나를 흔들어 댈 때

자폭하믄 안 되 ~~

그래야 내 자리 나로 돌아오는데 덜 힘들어...

알면서도 감정이라는 폭풍을 맞으면

옆으로 비켜서 피하기가 힘들다

옆에 다른 가지처럼

언젠가는 죽어 마른 가지 되겠지만

꽃을 피우고 잎을 푸르게

가지를 쭉쭉 뻗어 주는 게야 ~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나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

양보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설 공간이 너무 좁아져 있다.

교도소 감방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 영역이 그 감방만큼 좁아진 것을 느끼게 된다.

자유로운 인간에게 기본적인 활동공간을 제한한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다.

동물들도 자신의 영역 범위가 정해져 있어 누군가 침범하면 싸워서 지켜낸다.

하물며 사람인 나는 내 자리를 뺏기고 뭐 하고 있는 것인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양보해주는 사람을 계속 양보하라고 밀쳐대는 일진이 있다.

전 회사에서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주기를 원하고 자신만이 회사 내에서 전부인양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공감력이 크고 다혈질인 나에게 휘두르는 그 사람의 말과 감정들은 내 시간들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 더 이상은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해도 멈추지를 않았다. 자기 이외에 모든 사람을 비난해대는 그 사람의 말들이 내게는 독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문제가 생어 힘들어하는 줄 알고 도와주려 했지만 끝이 없었다. 내 한계를 넘어선 문제들이었고 끊임없는 비난의 반복이었다. 그 사람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기 위해서 말을 하였다. 그런 비난들은 관심도 없고 듣기도 싫다고 했다. 그런 나에게 그 사람은 같이 비난해 놓고 자신에게만 뒤집어 씌운다며 의리 없는 배신자라는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일에 집중하지 않고 하루 종일 비난하기 바쁜 그 사람이 어느 날 보니 정신병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거리를 두든가 그렇게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하는 공간적 거리라도 있으면 버티겠는데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하고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허약하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닌데 어느 순간 보면 그 사람이 내 공간을 다 차지하고 휘젓고 있었다. 나는 나를 구제하기 위해 회사를 관두었다. 정말 살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는 쪼들리지만 잘한 선택이라 후회는 없다.

좀 못되게 구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참고 마음의 창을 열어 놓고 있으면 언제 가는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리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너무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 사람이 나의 한계를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무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있어야만 회사도 있고 세상도 있고 친구도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있지 못하고 상대에게 휘둘리면 감정만 격해져서 상대방의 농락의 폭풍 속에 말려들어 자폭하게 된다. 양보도 호구가 되기 전까지 만이다. 양보는 서로를 위한 양보이어야 하지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의 양보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방적인 양보는 폭력이며 무의미한 희생이다.

세상에는 일진 같은 사람도 살고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간다. 나는 나로 살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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