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무관심

by 오순


예전에 시골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텃밭 쪽에 있는 돼지 막에서 불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이웃집 아저씨와 술을 한잔하면서 피웠던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재에 불씨가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거름 더미 쪽에 버렸는데 바람이 불면서 가까이 있던 짚단에 옮겨 붙은 것이었다. 한밤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채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으나 안채까지 옮겨 붙지 않아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던 것 같다.


돼지 막이 불길에 주저앉았고 돼지가 놀라 밭으로 도망쳐 나갔다. 불은 텃밭에 있던 짚더미와 콩밭을 홀랑 다 태워버렸다. 안채까지 불이 번질까 봐 걱정이 된 어머니는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가 안마당에 있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불을 끄고 계셨다. 동네 사람들은 안채로는 불이 번지지 않을 것이라며 불을 마저 끌 생각을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벼 수확이 끝난 뒤 땔감으로 쓸려고 쌓아놓은 산더미 같은 짚더미가 불길에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구경꾼에게는 장관이었겠지만 나에겐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내 것이 불에 타고 있으니 남의 것이 불에 탈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고통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불을 끄는데 도와주든 구경하든 상관없이 우리 집 온 식구는 총동원되어 열심히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서 날랐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물을 나르는 모습을 본 동네 어른들이 소용없다고 그만해도 된다고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불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새벽이 다 되도록 물을 날라 불을 껐다. 우리 집 우물이 바닥이 나서 이웃집 우물 두 개가 바닥나도록 물을 퍼 날랐다. 그래도 탈것은 다 타고야 말았다. 겨우 불을 끄고 나니 우리 식구들은 모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키우던 돼지가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었다. 안채까지 불이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며 동네 사람들은 돌아갔다. 불을 끄고 뒤처리를 하고 나니 학교에 갈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밥할 정신이 없는 듯 불조심하지 않은 아버지를 탓하며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밤새 불 끄느라 팔다리는 맥이 풀려 기운이 없는 데 아침밥도 먹지 못하여 배도 고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보니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 까져 피가 맺혀 있었다.


그렇게 맥없이 쉬는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바로 이웃에 살고 있던 같은 반 친구가 조용히 다가와 나에게 힘들었겠다며 위로를 했다. 그제야 난 나에게 이웃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힘든 줄 알면서 구경들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위로랍시고 말만 던지고 가다니, 차라리 불난 것을 아는 척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괘씸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힘들게 불을 끄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방관만 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 분노를 억누르다 보니 속은 불타는 것 같은데 겉은 차갑게 냉각되는 것 같았다.


밤새 불을 끄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지인들의 무관심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는 의식이 뒤늦게 왔다. 그 뒤로 난 그 친구를 다시는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며 가며 만나도 아는 척은 하지만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일 뿐 마음을 나누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지 괴롭지 않았다. 그전에는 그 친구가 나를 가까이 대하지 않는 것이 소심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무심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 나니 친하지 않아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굶어서 기력이 다 떨어졌는지 하교하는 중간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불이 났다는 사건이 터지고 잠시 나는 내 주위에서 구경거리가 된 듯했다. 힘들 때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센 불길도 무서웠지만 공감하지 않는 지인들의 무관심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겐 그저 내가 하나의 집이나 길 위에 있는 돌덩어리였다.


그 무관심의 배타성을 알기에 나는 내가 상대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던 아니 되던 마음은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다. 배고프고 집 없는 떠돌이에게 가장 슬픈 것은 닫힌 창문이라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가진 것들이 모두 다르고 차이가 나지만 마음은 모두 다 똑같이 가지고 있다. 공감하고 공감받을 수 있는 그 마음의 문을 닫지 않으면 세상은 살만하다고 본다.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군가의 고달픔을 들어만 주어도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게 해 준다. 마음을 닫지 말자는 것이 나의 인생 모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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