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이것도 흥, 저것도 흥 그저 모두 다 그저 그럴 때가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멜로디라도 계속 듣게 되면 싫증이 난다. 너무 오래 산 것일까? 나이가 드니 모든 것들이 색다르지 않고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할 수 없고 오늘과 내일을 분별할 수 없다. 매일매일이 똑같다.
하는 일도 새롭지가 않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느낌이다. 하물며 먹는 것마저도 그 맛이 그 맛이다. 특별히 맛집이라 하여 가보지만 입안에서 느끼는 것은 그 맛이 그 맛이다. 예전에는 맛집이었는데 이젠 맛이 변했다며 투덜거리며 깨작거리게 된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맛있다며 잘 먹는다. 맛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다.
왜 이렇게 다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전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도 다름을 느끼고 그것을 즐겼었는데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것저것 다 뒤섞여 뒤죽박죽이 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으니 일상이 지겨워졌다. 사는 것이 지리멸렬해졌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반복적인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잠에서 깨었지만 눈뜨는 것조차 귀찮아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친구를 부르고 웃고 떠든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찬 아이들 모습이 상상이 된다. 뭐가 저리 재미있을까? 나도 재미있게 살고 싶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고 재미가 있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활력을 찾기가 버겁다. 한마디로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간혹 어쩌다 미약하나마 즐거울 때가 있다. ‘아! 이런 것이었구나.’하고 내가 즐거워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기억 속에서 끌어내 즐거움을 인식하는 나를 보며 그런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깜짝 놀라곤 한다. 웃음을 잃은 거인이 어떻게 웃는 것인지 몰라 아이에게 웃는 것을 배워야 했던 동화에서처럼 즐거움을 아예 잃어버려 즐거움을 다시 배워야 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어쩌면 가공된 즐거움을 사야 할지도 모른다.
예전의 즐거움은 생생한 즐거움이요, 이제 다시 만들어낸 것을 사는 즐거움은 권태로운 가짜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한 즐거움은 아마도 즐거움이라 할 수 없다. 그냥 권태인 것이다. 감정까지도 사고파는 물건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것이 진짜 감정인지 가짜 감정인지 구분이 안 되어 가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안 되겠다. 정신을 차리자. 살아 있는 진짜 삶을 살자. 감정도 내 것으로 내 삶도 내 것인 것으로 살자.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고 삶이다.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가 문제가 아니다. 그저 내가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삶이다. 권태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