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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순자 Sep 07. 2021

137. 연분홍 꽃비 내리던 청풍호 벚꽃과 제천의 명소

연분홍 꽃비 내리던 청풍호 벚꽃과 제천의 명소                                                       

                                                                     * 제천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어 쓴 글입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생략)”


약 40년 전 대학 학창 시절, 내가 다니던 학과는 학기마다 2박 3일이나 3박 4일 일정으로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찾아 답사를 다녔다. 밤에는 함께 어울려 여흥의 시간도 가졌다. 그때 은사님 한 분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막걸리 한잔에 구수한 목소리로 불렀다. 반야월 작사, 박재홍 선생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이다.


가사 속 천둥산과 박달재가 있는 곳이 제천이다. 제천 하면, 나는 이 노래와 더불어 삼한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의림지가 떠올랐다. 그러던 중 관광버스를 운전하던 어느 분에게 지금까지 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잠시도 망설임 없이 자동 녹음기가 틀어져 나오듯 말한다.


“그야 두말할 필요 없이 청풍호 벚꽃이죠.”


나는 벚꽃 필 무렵이면 청풍호 벚꽃을 보러 가야지, 벼르기를 하다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10여 년 전 4월 20일경 지인과 1박 2일 일정을 잡았다. 먼 길이라 운전하기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청풍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차창으로 벚꽃이 스쳐 지나간다. 버스에서 내려 벚꽃길을 걸었다. ‘청풍호 벚꽃축제’ ‘청풍명월’이라는 간판들이 보였다. 벚꽃에는 청사초롱을 내걸어놓았다. 제천은 청풍 한우도 유명하다는 것을 그때 가서 알았다.


실컷 벚꽃 구경하다 저녁 식사는 한우로 했다. 충청도 인심만큼 넉넉한 밥상이었다. 숙소는 비봉산에 안긴 멋스러운 곳으로 풍광도 아름다웠다. 다음날 배를 타고 청풍호 유람을 했다. 멀리 가까이 보이는 산과 기암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장회나루에 도착, 다시 버스를 타고 귀가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내가 다시 제천을 찾은 것은 7년 전이다. 당시 여든의 노모와 떠난 3박 4일 일정의 가을 여행이었다. 박달산 자연휴양림에 숙소를 정하고, 근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가까이 구학산 자락에 모 기업에서 운영하는 휴양지에 가서 목욕만 했으나, 비 오는 날 오고 가는 길가의 오색의 단풍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또 박달재 옛길, 금봉이 박달의 과거 급제를 서원했던 곳, 여든 어머니가 금봉이가 되어 부르던 ‘울고 넘는 박달재’ 등이 떠오른다.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를 원서문학관으로 꾸민 오탁번 시인과의 만남과 옛 책걸상 앉았던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 탁사정, 배론성지, 의림지도 둘러보고 왔다.


배론성지는 배 밑바닥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황사영 백서가 쓰인 토굴이 있어, 천주교 신자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여든의 어머니는 노란 은행나무 잎이 좋은지 , 소녀마냥 사진 은행나무를 가슴으로 안고 촬영을 요청했다.


제천은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토지가 비옥해서 선사시대부터 조상들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좋은 위치이다 보니 서로 이곳을 차지하려고 했다. 일찍이 삼국시대에는 격돌지이기도 했다. 지금은 청풍호 문화재단지로 지정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인과 봄에 찾은 청풍명월 벚꽃 길은 자연과 소박하게 어우러진 도로변에 길게 늘어선 벚꽃길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찾는 제천은 가을빛이 선명해서 좋았고,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그 의미가 컸다. 제천에서 선사시대 조상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하며, 영혼의 자유인을 꿈꿔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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