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에서 보낸 특별한 여행

by 최순자

몇 년 전부터 대학 친구와 올 초에 여행을 하기로 했다. 친구는 나이가 나보다 세 살 위로 올해 회갑을 맞았다. 기념으로 둘이서 조용한 곳에서 쉬다 오자고 했다. 여행지는 베트남 다낭과 제주 얘기가 오가다 제주로 정했다. 3박 4일 일정으로 지난 2월 12일부터 15일까지 다녀왔다.



친구는 대학에 입학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는 책을 건네면서 “우리 친구하자.”라고 했다. 주인공 제제와 뽀르뚜가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친구가 되었듯이, 서로 친구가 되자는 의미였을까? 나중에 친구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대학에 들어왔다.”라고 했다. 나를 친구로 선택해 준 점이 고맙다. 그 우정이 40여년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80년대 격동기 때 역사를 공부했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일요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때에 따라 여행을 다녔다. 지금도 기억나는 여행 중 하나는 원주 치악산 등산 중 계곡에서 모두가 선녀가 된 일이다. 학과 선후배끼리 ‘시중(時中)’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한문으로 된 ‘맹자’를 읽기도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친구는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있는 나에게 김치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종종 와서 식사를 해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웠던 것은 방학을 맞아 멀리 고향에 가 있는 나를 찾아왔던 일이다.



청춘의 시기, 우리는 암울했던 역사의 한가운데서 고뇌했다. 곱창집에서 “맑은 영혼을 위하여”라며 쓰디쓴 소주를 마신 날들이 얼마였던가. 잔디밭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에 취한 나는 보들레르의 시 ‘취하게 하라’를 읊조렸다. “취하게 하라... 그러나 무얼 가지고 취할 것인가/ 술로 시로 아니면 당신의 미덕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그러면 친구는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납니다.”라고 가곡 ‘바위고개’로 화답했다.



‘젊음을 치열하게 보내자’고 약속했던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격동의 시기를 체험한 나는, 모두가 행복한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 하여 인격이 형성되는 영유아시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관련 공부를 다시 해서 강단에 섰다. 친구도 대학 졸업 후 계속 공부해서, 일본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각자 나름대로 사회, 역사적 몫을 하고 있다.



숙소는 친구가 묵고 싶다는 곳으로 했다. 서귀포 항구와 바다가 보이고 주변이 조용한 곳이었다. 여행 때 힘든 점 중 하나는 잠자리를 옮기기 위해 짐을 싸는 일이다. 우리는 한 곳에 머물기로 했다. 또 코로나19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발생한 뒤라서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호텔에서 쉬면서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서귀포항, 새연교, 새도, 천지연폭포, 동문 오일장, 서귀 본향당, 이중섭 미술관(공원, 주거지, 거리), 서귀진지를 산책 겸 둘러보았고, 향토오일장은 버스로 다녀왔다. 마지막 날은 짐을 공항에 맡기고 4.3 평화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1.4평의 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엄혹한 시기를 살았던 이중섭의 예술혼을 엿보았고,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4․3을 안고 있는 평화공원 뒤쪽의 오름을 보고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4․3의 슬픔은 눈물로도 필설로도 다 할 수 없다/ 그 사태를 겪은 사람들은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다(현기영, '목마른 신들' 중에서)."는 글을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고 기억하련다.



여행은 볼거리와 더불어 먹거리 재미도 있다. 아침은 호텔에서 나오는 간단한 토스트로 해결했다. 점심과 저녁은 토속음식을 좋아한 우리는 돼지뼈국, 김치찌개, 순대국밥, 팥칼국수 등으로 했다. 도착 이틀째 바닷가에서 맛 본 모듬회가 그나마 섬다운 먹거리였을까. 음식은 소박했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내가 미리 준비한 21년 산 주(酒)와 땅콩, 김, 멸치, 고구마, 귤 등을 안주 삼아 담소를 나눴다. 방안에 TV가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날 알았다.



2월 중순이었지만, 이미 와 버린 제주의 봄은 만개한 매화가 꽃비를 내리고, 연초록은 푸르름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노랑 유채꽃이 손짓하고, 두 번 핀다는 동백은 빨간 자태로 드러누워 있었고, 해변가 솔은 의연하고, 멀리 한라산 흰 눈은 마음을 줘야 보여주겠다고 구름 뒤에 숨었다.



마음이 통한 사람과의 여행은 행복하다. 친구는 말했다. "우리는 풀잎과 같은 사람이다. 그냥 제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여행기를 주고받아 소박한 책으로 묶어내자고 했다. 벌써 다음 목포 여행이 기대된다. 우리의 우정을 축복이라도 해주듯, 천지연폭포에는 무지개가 한참이나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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