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95세 은사님을 떠나보내며

by 최순자


‘온화, 자상, 겸손, 부드러움 속 강인함’. 지난 16일에 향년 95세로 소천하신, 여고 3학년 때 담임이셨던 은사님에 대한 인상이다. 1926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셨다. 자그마한 체구지만 정신력은 대단하셨다.


처음 만난 것은 약 40여 년 전 여고 2학년 때이다. 일본어 선생님이셨다. 어느 날 같은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은 없다. 그다음 만났을 때 시인이신 사부님이 쓰신 <산서껀 물서껀> 시집을 건네주셨다.


내가 학력고사를 보던 날 아침, 안국동 풍문여고(옛터) 정문에서 기다리고 계시다 응원해 주셨다. 대학 합격 후, 여고 관계자분에게 장학금을 받은 내가 모든 선생님들께 양말 선물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겨주셨다.


여고 졸업 후 반창회 때, “순자는 교수가 될 것 같아.”라고 하셨다. 아직 내가 공부를 할 때인데 제자의 앞날을 훤히 내다보신 듯했다. 내가 대학원을 마치자 대학 학장이 되신 교장 선생님을 같이 만나러 가잖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학장(현, 총장)실을 찾았다. 교장 선생님이 젓갈 종류를 좋아하신다며 선물로 준비해 오신 기억이 남아있다. 나도 알고 있는 분이지만 인사시키셨다. 제자 일자리를 염두에 두신 것이리라.


나는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7년 후 귀국했지만 찾아뵙지 못했다. 바쁘게 보내다가 약 10여 년 전, 여름 방학 때 댁 근처에서 만났다. 그동안 회포를 나누느라 다섯 시간이 금방 갔다.


“올해(85세)부터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근육이 아파, 날씨가 추우면 더해. 이제 하나님이 데려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라고 하셨다. 뷔페식 샤부샤부에서 점심을 했다. “그동안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잘 못했어. 오랜만에 많이 먹게 되네.” 하신다.


식사 후 일제 강점기 체험과 6․25 때 겪은 일 등을 들려주셨다. “아이가 귀가했을 때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몸은 노쇠했지만, 정신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주로 책을 읽으시면서 지내신단다. 준비해간 다과와 음료, 용돈을 드렸다. 어색해하시면서도 “행복하다.”고 마음으로 말씀해 주셨다. 은사님께서도 손수 포장을 하신 양말, 스타킹을 건네주셨다.


그해 연말 여고친구 부부동반 송년모임 때 뵙다. 집 방향이 비슷해 우리 부부가 모시고 갔다가 모셔다 드렸다. 덕분에 오고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후 종종 전화나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7년 전(88세)에 전화가 왔다. 은사님과 같은 교회를 다니는 내 제자를 통해 무릎 덮개와 편지를 보내오셨기에 답례를 했다. 답례에 대한 고마움에 전화를 주신 것이다.


“넘어져서 허리를 다쳐 조금 고생하는 것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 외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다.”고 하셨다. “70세까지는 집안일뿐 아니라 모든 일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어. 83세까지는 걷기 운동 차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서울에 있는 정동교회 노인대학에 일주에 두 번 다녔어.”라고도 하신다.


힘이 부치지만, 손자와 놀아주기,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독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셨다. “언제가 죽기는 할 텐데, 건강하게 지내다 죽고 싶어.”라고 하신 말씀이 귓가에 남아있다.


5년 전, 졸저 <아이가 보내는 신호들> 출판기념회에 모시려고 연락을 드렸다. 건강 상 참석이 어렵다며 축사를 보내주셨다. 여고 친구가 대신 낭독한 축사에는 “... 성실하며 초인적인 노력을 하던 학창 시절의 그 성품이 가져온 결과니, 앞으로도 더욱 정진의 성과가 있기를 축원합니다.”라고 써 있었다.


이후 내 책을 다 읽으시고 당시 90세가 무색하게 힘 있는 필체로, 일본어로 쓴 세 장의 편지를 보내오셨다. 책에 대한 덕담, 한일 비교, 민족 통일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교수가 될 것 같다고 하시더니, 최근 몇 년간은 “순자는 정치가가 될 것 같아.”라고 하셨다. 나에게 리더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메시지를 주시려는 듯하다.


지난해 봄, 식사라도 하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이 힘들다고 하셨다. 대신 “자네는 120세까지 살게 될 거야. 공기가 안 좋은 날은 운전할 때도 마스크 쓰고 다녀.”라며 제자 걱정을 하셨다. 여고 동창회 후 댁으로 모셔다 드리며 나눴던 얘기, 경주 여행 중 빵을 보내드렸더니 좋아하는 먹거리라며 일부러 전화를 주셨던 일 등도 주마등 처럼 스친다.


새해에는 문자만 드리고, 목소리는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다. 특강을 하던 날 전화를 주셨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이었기에 길게 얘기를 나누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쉽다. 며느리가 인사오던 날 물과 연관된 호를 지어주면서 “물처럼 살라.”고 당부하셨단다. 그런 당신이 물처럼 살다 가셨다.


은사님은 존함 한자 봄비(春雨)로 제자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완연한 봄에 먼 길을 떠나셨다. 10년 전, “인생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한 철학자의 말처럼 살아야 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새기며, 40여 년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기억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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