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순자 Jan 13. 2022

155. 자기주도적 학습은 영유아기부터 시작해야


아동심리&부모교육 전문가 최순자 박사 286회 칼럼

최순자(2022). 자기주도적 학습은 영유아기부터 시작해야.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2022. 1. 12.


검은 호랑이해 임인년 새해가 시작한 지 13일째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된 연초에 받은 새해 인사를 열어봤다.

눈에 띄는 플라워 레터가 있었다.  

  

7년 전 K 대학 교양수업 ‘행복론’에서 만난 학생이 보냈다.

이 학생은 매년 인사를 전해오고 있다.     

“새삼 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날이 종종 생각납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교수님의 교육 철학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찬찬히 보니 꽃바구니 위에

“웃음 2배 걱정은 0

사랑 2배 행복 2배”라 쓰인 제작사 덕담과

바구니 담긴 꽃이 작약인 듯

“작약꽃의 꽃말은 새로운 시작입니다.”라는 말도 쓰여 있다.     


새해 편지를 보낸 학생은 의료계 전공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교과목 공부 방식이 주로 외우거나 실습이었을 테다.

그런 수업을 주로 받다가

교양수업으로 받은 내 과목은 

자기 생각을 발표하고, 다른 학생들과 토의하거나

또는 감사한 내용을 써보는 경험은 새롭게 받아들여졌을 터이다.     


나는 동경에서 7년 공부했다.

우리와 그들과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을 얘기하라면

교사가 주도권을 갖는가,

학생들에게 주도권을 주는가의 차이이다.

이는 영유아기 교육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도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일본과 비교한다면,

아직도 교사가 주도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주기보다 답을 알려주거나,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발문하기보다,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변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가 일본과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자의 차이를 만들고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한다거나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교육의 결과를 대학생의 시험답안에서도 확인한다. 

나는 시험 결과의 변별력을 갖기 위한 적은 문항의 단답형 외에는

핵심을 토대로 자기 생각을 쓰면 점수를 후하게 주는 

논술형 문제에 비중을 두고 출제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은 논술형을 어려워한다.

단순 지식을 그냥 외워서 쓰는 시험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9년부터 보육과정과 유아교육 과정이 놀이 중심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미 20년 전부터 놀이 중심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문제는 자기주도적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교사들에 의해

교육이 진행되다 보니 아직도 교사 주도적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유기부터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해서는 

우선 교사들이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었으면 한다.

나는 이를 ‘덩어리 시간’이라 칭한다.     


동경 유학 시 대학원 선배 중, 

아동교육학과 교수인 사토우가 있다.

그가 나와 공동연구로 한국에 왔다.

그때 내가 맡은 유아교육 관련 강의 시간에 특강을 요청했다.

그가 준비한 강의 자료는 해당 대학의 부속유치원 아이들의 생활이었다.


그중 인상 깊은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 아이가 등원하면서 우유 종이팩을 갖고 왔다.

아이는 교실 한쪽에서 뭔가를 한참이나 만든다.

교사는 아이를 몇 번 바라보지만 개입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 그 아이는 

기쁜 목소리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말한다.

“봐봐, 내가 로봇을 만들었어.”     

그 아이는 혼자서 우유 종이팩을 재활용해 

로봇을 만들면서 

자르고, 접고, 붙이고 했을 터이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원리와 개념을 배웠을 것인가?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해서는 

다음으로 답을 주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비계설정으로 발문했으면 한다.

비계란 발판, 디딤돌을 말한다.

원래 건축학 용어이다.

건물을 지을 때 디딜 수 있도록 세우는 가설물이다.

교육학에서는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가 말한 개념이다.


예를 들면,

내가 어렸을 때는 얼음 찾기 게임이나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찾기 게임을 했다.

놀이로 누가 찾은 얼음이 두껍고 고드름이 큰지를 살피는 것이다.

아이들은 두꺼운 얼음과 큰 고드름에 관심이 있다.

즉 결과만 생각하는 것이다.

만일 이 게임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한다면,

교사가 할 수 있는 비계는 응달을 가르치며,

“얘들아, 왜 저기는 얼음이 저렇게 두껍게 얼었을까?”라고 발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곳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은 곳이라는 것,

그래서 습했다는 것, 그런 곳은 온도가 낮아 얼음이 두껍게 언다는 것 등을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들로 자라도록 하기 위해 

교사들이 아이들의 활동에 개입을 최소화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인 덩어리 시간을 주고,

답을 주지 말고 발문하는 비계를 설정해 주길 바란다.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이전글 154. 어린이를 배려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