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넉 점 반’ 그림책이 좋다. 왜냐하면 한 아이의 당당한 모습과 천진난만한 동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림이 따뜻하고 한국적인 점도 좋다. ‘넉 점 반’ ‘넉 점 반’이라는 시어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운율도 마음을 밝고 경쾌하게 한다.
‘넉 점 반’은 네 시 반의 뜻으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나리 나리 개나리’ ‘퐁당 퐁당’ 들을 지은 윤석중 선생님 시이다. 그림은 동양화가 이영경 화백이 그렸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이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리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윤석중, 넉 점 반 전문)
내가 처음 ‘넉 점 반’을 만난 것은 6년 전 파주 북소리 축제 때이다. 행사 프로그램에 선정돼 ‘아동발달과 그림책을 통한 독서습관’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사는 그림책 작가 제님이었다.
그때 강연자가 준비한 그림책 중 한 권이 바로 ‘넉 점 반’이었다. 그림책 속에서 만난 아이의 능청스런 모습과 따스하고 토속적인 느낌의 그림이 내 기억 한 켠에 온전하게 자리 잡았다. 아이가 돌아다니며 되 내이는 ‘넉 점 반’ ‘넉 점 반’과 마지막 부분의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라는 말도 아직도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구상 모든 아이가 그림책 속 아이처럼 자라기를 소망한다. 부모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아이가 물 먹고 있는 닭과 개미, 잠자리, 분꽃 구경을 하며 놀듯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했으면 한다.
나도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행복한 기억은 친구들과 땀 뻘뻘 흘리며 해 지는 줄 모르고 오징어놀이, 자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놀이를 했던 추억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해준 환경과 규제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안타깝게 이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나는 내가 가장 바라고 있듯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영혼의 자유를 느끼며 자기답게 살아갔으면 한다. 그러려면 인간발달의 기초를 이루는 어린 시기부터 누군가의 지시나 강요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환경이어야 한다.
교육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장 자크 루소는 ‘에밀’이라는 저서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 즉, 각자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사회의 잘못된 제도나 가치, 지나친 학교 교육이 오히려 인간이 자기 본성대로 살아가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체면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넉 점 반’ 주인공 아이의 행동과 태도는 무심한 듯 당당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해가 져서 집에 돌아간다. 시간을 알아보고 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다 했다는 의기양양함도 보인다. 나도, 이 땅의 아이들도, 어른들도 이 아이와 같았으면 하는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