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빼듯 후련한 여행
몇 달째 오른쪽 어금니 쪽으로 음식 씹기가 불편했다. 왼쪽으로 주로 음식을 먹으며 무심한듯 그냥 놔뒀다. 그러다 오늘 오후에 1년에 한 번 하는 치석 제거를 하러 갔다가 상태를 얘기했다. 치과 실장이라는 분이 치아 사진을 찍어봐야 알 것 같다며 나를 오래된 기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그 치과는 연세가 있는 의사 두 분이 진료하는 곳으로 기계도 현대식이 아니라 옛날 그대로이지만, 왠지 믿음이 가서 찾고 있는 곳이다.
선명하지 않지만, 흐릿한 내 입안의 이들이 찍혀 있는 사진을 보며 원장이 설명한다. 오른쪽 사랑니가 아래쪽 잇몸을 누르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 불편했을 것이며, 그 사이에 음식물이 낄 수 있고, ‘필요 없는’ 사랑니이니 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가지고 태어난 자연 그대로를 좋아하는 데 ‘필요 없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고 빼기로 했다. 의사는 입안을 먼저 마취시킨 후 기계로 사랑니를 빼면서 “참 예쁘게 생겼네,”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내 사랑니를 보고 싶었다. 간호사가 뺀 사랑니를 보여준다. 사랑니는 생각보다 컸고 잇몸에 박혀 있던 뿌리 부분이 마치 두 다리로 내 몸을 지탱해 주듯 두 갈래로 생긴 아랫부분이 길었다.
오후에 만난 어떤 이에게 사랑니를 뺏다고 했더니, “오랫동안 사랑하셨네요.”라고 한다. 오랫동안 사랑한 사랑니를 빼고 나니 나중에 상태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원한 느낌이다. 오랫동안 신경 쓰였던 사랑니를 뺀 느낌의 후련한 여행지가 있다.
한 곳은 인도이다. 작가 조정래 선생이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소설 구상을 위해 인도를 가는데, 11일간 일정으로 팀을 꾸린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했다. 인도에서 민족을 위해 비폭력 운동을 펼쳤던 나의 정신적 스승 마하트마 간디의 흔적을 만나고 보고 싶은 생각과 류시화 시인의 글을 통해 모두가 철학자인 인도인들을 만나 보고 싶었다. 그 바람을 3년 전에 이뤘다.
또 한 곳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였다. 지인 중 한 명이 이 세상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사람, 안나푸르나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안나푸르나를 알고도 못 가본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안나푸르나를 극찬하면서 자신은 안나푸르나에 잠들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떤 곳이길래 저렇게까지 얘기할까라는 생각에 꼭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또 태초의 설산을 보면서 걸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 바람은 지난해 말에서 올 초에 다녀왔다.
이 두 곳의 여행은 나에게 사랑니를 빼고 후련한 하듯이,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차에 다녀온 후련한 여행이었다. 게다가 인도에서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에게서조차 편안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편안한 안(安)’자를 품게 된 여행이었다. 안나푸르나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신의 영역과 공기가 맑은 이상의 영역, 먼지 가득한 현실의 영역을 보고 ‘이상의 영역’을 꿈꾸게 여행이었다. 언제가 알프스산맥을 넘는 스위스를 다녀온다면 더 후련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