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 그곳의 송이 향기 여행을 다시 꿈꿔본다
비타민D가 풍부하고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 알려진 송이 철인가 보다. 낮에는 집에서 웹엑스로 학부생과 대학원생 대상으로 비대면 강의를 했다. 저녁에는 현장 교사 강의를 해당 교육원에 가서 줌으로 해야 했다. 7시부터 강의 시작이라 저녁을 먹기 위해 교직원들이 장부에 적고 먹는 곳으로 갔다. 경의선 역사에 있는 식당에서는 코레일 직원들이 식사하고 있다. 창가 쪽 TV에서 송이가 많이 나는 지역에 간 방송인이 현지인과 송이를 채취해서 파는 장면이 나왔다. 1키로에 26만 원이라 한다. 기후에 민감한 탓에 희소가치가 있어 비싸다고 한다.
송이 하면, 두 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하나는 부정적인 기억이다. 동경 유학 중 만난 선배 언니가 결혼 후 미국에서 살고 있다. 송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큰아이 이름을 송이라 했다. 아직 내가 동경에 유학 중일 때에 한국에 나간다고 했다니, 송이가 제일 먹고 싶다고 구할 수 있으면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서울에 도착, 시장에 가서 송이를 구했다. 비싸다고 했던 송이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까지 보내는 운송료가 송이의 몇 배가 되었다. 아, 그런데 내가 송이로 알고 보냈던 버섯은 나중에 알고 보니 표고버섯이었다. 시장에서 팔 때 분명히 송이라고 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송이를 잘 몰라 속은 나도 어리석지만, 표고버섯을 송이로 판 사람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속은 나는 송이도 제대로 모를 뿐 아니라 표고버섯도 잘 몰랐던 어리숙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송이에 대한 또 하나는 기억은 송이 향기의 원형을 갖게 해준 추억이다. 중학교 때 친구가 남편을 따라 울진 산속에 귀농해서 살고 있다. 10여 년 전 친구네 집을 방문했다. 아침 밥상에 송잇국이 따라 나왔다. 그냥 물에다 송이를 넣고 끓여 소금으로 간을 했다. 온전히 송이 향기만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나는 송이 향기가 그렇게 진하고 그윽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지금도 그 향기가 입안과 코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이후 친구가 집으로 신문지에 싼 송이 몇 송이를 보내준 적이 있다. 향기는 진하기는 했으나,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울진의 그곳의 향기는 아니었다. 친구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어느 해,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하며 하루에 한 마리만의 종이학을 접어, 301마리 학을 유리 상자에 넣어 생일 선물로 건네주었다. 한 마리를 덧붙인 이유는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라 했다. 친구는 지금도 그때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농사지으며 산속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제일 먼저 송이 향기를 맡으러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