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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순자 Jul 31. 2024

사회적 돌봄과 집에서 죽을 권리

雲山 최순자(2024). 사회적 돌봄과 집에서 죽을 권리.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7. 31.  

   

“아야, 별나게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해주고 가더라.” 구순 노모가 한 말이다. 노모를 보살피고 있는 요양사가 의료진이 집으로 방문해 주는 ‘돌봄 의료’ 제도가 있는데, 가족이 신청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 다행히 노모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에 신청했다.      


먼저 전화로 알아봤다. 병원인데 사회복지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후 병원에서 문자로 신청서와 이용 대상자 현황을 파악하는 설문지 두 장을 보내왔다. 신청 후 원하는 시간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방문했다. 일정 비용은 부담하지만, 거동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편리한 제도라는 생각이다.     

 

가난 속에서 허리가 휘도록 6남매를 기르신 구순 노모가 혼자 식사해 드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필 생각으로 모셨다. 그러다 1년 후 사정이 생겨 형제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가셨다. 비교적 동선이 짧은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원룸형 아파트 전세를 얻어 드렸다. 거동에 불편으로 다행히 재가서비스 대상자 판정을 받아 요양사가 평일 하루 3시간씩 와서 말벗, 청소, 먹거리 준비, 외출 동행 등을 해준다.    

  

‘아침 이슬’ ‘상록수’ 등으로 잘 알려진 최근 고인이 된 김민기의 ‘서울로 가는 길’ 가사의 일부분이다. “아침에 울던 까치야/ 나 떠나도 찾아와 우리 부모 위로하렴.” “앞서가는 누렁아 왜 따라나서는 거냐/ 돌아가 우리 부모 살펴봐 드리렴.”. 3년간 병 수발하다 서울로 돈 벌러 가며 까치와 누렁이에게 부탁한다. 그때는 늙고 병들어도 온전히 개인 몫이었다.      


마을 분 중 구순 넘은 어머니가 한 달 전에 별세한 분에게 삶은 옥수수를 드리려 갔다. 보통 그럴 경우 ‘호상’이라고 하지만, 당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엄마한테 잘못해 드린 것만 생각난다.”라고 했다. 먼 곳 시설에 계신 어머니에게 자주 찾아가는 것 같았는데도 그랬다. 이처럼 나이 들어 시설 이용도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분의 어머니 경우도 시설에 내는 비용이 꽤 많았다.     


복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집에서 사회적 돌봄을 받지 못하고 혼자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노모도 고관절을 다쳐 병원 입원, 요양병원 생활 등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만만치 않은 병원비를 형제들과 분담했다. 그 이후 노모 거동이 불편해 올해 들어 그나마 일정 시간이나마 재가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전체 보살핌에 비하면 사회적 보살핌은 일부분이다.      


누구나 늙고 죽는다. 살던 집에서 혼자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다가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2020년 통계에 의하면, 57% 노인의 바람이다. 그런데 사실은 70%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4년 전 통계이니 지금은 그 수치가 더 높을 터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집에서 죽을 권리’를 노인복지 정책의 핵심 가치로 정했다고 한다(박현갑, 집에서 죽을 권리. 서울신문 2024. 7. 25). 집에서 노년을 보내다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복지정책 전환을 기대한다. 사회적 돌봄 대상과 시간 확대, 주거환경 개선 등이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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