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 교사교육 전문가 雲山 최순자. 그럴 수 있지, 그것이 인생이다.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2025. 2. 5.
을사년 새해가 시작되고 스무날 정도 지나 5박 6일 일정으로 이웃들과 제주에 다녀왔다. 새벽 2시 반에 출발, 한 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려, 4시 40분에 김포공항행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표를 받은 후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대신하고 6시 30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 음료가 나왔으나 찬 음료를 마시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 사양했다. 창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나니 이륙 후 한 시간 정도 지나 벌써 설문대할망 전설이 깃든 제주가 눈 앞에 펼쳐진다.
이번 여행은 ‘허’ 자가 붙은 차를 대여하지 않고 많이 걷고 버스로 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서귀포 숙소로 가는 131번 버스를 탔다. 약 한 시간 걸려 도착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체크인하기에 이른 시간이라 가방을 맡기고 올레 5코스를 걸었다. ‘남원큰엉 해안경승지’였다. ‘엉’은 ‘언덕’이라는 제주 방언으로 화산 응암 덩어리와 바다가 만나 만들어낸 절경으로 1.5km에 이른다.
이번 여행 목적은 '걷기'였다. 바닷가를 걷는 게 그냥 좋았다. 빨간 동백꽃이 4·3의 혼으로 다가오는 곳을 지나고, 까치밥 감이 달린 감나무와 하얀 눈이 쌓인 한라산 배경이 절경이었다. 도중에 귤 농장에서 만 원어치를 샀더니 싱싱한 귤을 30여 개나 담아 준다. 길가 정자에 앉아 먹고 나머지는 각자 가방에 넣었다. 두 시간 정도 걷다가 “제주 하면, 흑돼지고기를 먹어야지.”라는 일행의 말대로 점심으로 먹었다. 매운 고추, 계란찜을 곁들여 실컷 먹었는데도, 몇 점 남기고 일어섰다.
낮에 잘 먹어서 저녁은 간단히 라면으로 했다. 식사 후 룸메이트와 산보를 나섰다.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 내음과 제주의 살가운 바람이 좋았다. 이튿날, 아침에는 혼자 숙소 둘레를 걸었다. 햇살을 안은 윤슬이 시선을 끌었다. 자세히 보니 물속에 작은 바위가 있다. 그 돌 위를 파도가 왔다 갔다 한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왔다가 결국 물거품이 되나 저 바위는 의연히 서 있구나. 나도 저 바위와 같은 사람이 되련다.”라는 묵상을 했다.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이런저런 일이 있다. 이런저런 사람과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의연하게 나를 지켜가며, 존재 그 자체가 의미이고자 한다.
이튿날 숙소에서 반대 방향 남원을 거치는 올레 5코스를 걸었다. 바다, 등대, 윤슬, 돌담, 수선화 등이 눈 앞에 펼쳐진다. 역시 좋다. 태흥교 근처에 ‘집밥은 마더 카페 010-2629-9962’라는 소박한 간판이 눈에 띈다. 화살표 방향이 도로를 따라 직진하라는 건지, 바닷가 쪽으로 오라는 건지 애매하다. 전화했다. 직진의 의미였다. 10여 미터 앞 왼편에 자리 잡은 카페 겸 식당으로 귤 농장도 겸하는 곳이었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한 팀이 앉아 있었다. 우리도 창가 자리를 잡았다. 찬송이 흘러나온다. 일행이 주인장에게 “권사님이세요?”라고 물었다. 빙그레 미소로 답한다. “메뉴는 집밥 한 종류예요.”라고 한다. 집밥이 이렇게 호사스러울 수 있을까? 갈비구이, 돔구이, 배추전, 총각김치, 김치, 두부, 연뿌리, 감자무침 등 9가지에 진한 국물까지 나왔다. 1만 3천 원으로 가성비 최고였다.
행복감을 가득 안고 집밥을 나서 답례로 간판 방향을 잡아주고 넘어지지 않게 네 귀퉁이를 돌로 잘 눌러 주고 왔다. 다음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전화했다. “점심 재료는 다 떨어졌고 5시부터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어요.”라고 한다. 주인장에게는 ‘포천’ 하면 기억해 달라고 했다. 밀감, 한라봉 등을 주문할 예정이다.
셋째 날은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삼나무, 동경 유학 시 산에 가서 많이 본 스기가 많았다. 본래 이곳은 물찻오름을 다니기 위해 임도를 내면서 개방한 길로 15km에 달한다. 처음 가본 곳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제주 필수코스로 정해야 할 곳이었다. 본래 명상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도종환 시인은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 준 숲길을 예찬하며 ‘사려니 숲길’을 읊고 있다. “길을 끊어 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간산/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천천히 걷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먹게 된 매운탕, 갈치구이, 고등어구이가 제주의 맛을 느끼게 했다. 점심 식사가 늦었으나 그날 아침은 숙소에서 든든히 먹어둔 게 다행이었다.
넷째 날, 일행 중 미술을 전공하신 분의 바람으로 ‘빛의 벙커’에 가서 ‘샤갈, 파리에서 뉴욕까지’를 관람했다. 반추상화를 그린다는 샤갈 작품이 빛으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샤갈은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를 거쳐 세계 제2차 대전 중 망명한 뉴욕에서 작품 생활을 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빛으로 만들어 낸 작품을 감상하거나, 공간에 들어가 누워서 천장에 그려지는 그림을 감상하기도 했다. 무한한 창작력에 불탄 예술가들 앞에서 어린아이가 되었다. 샤갈의 파리 오페라 천장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패널, ‘출애굽기’ ‘천사의 추락’ ‘성경 메시지’ 등을 감상했다.
이왈종 화백의 그림도 함께 감상했다. 이 화백은 제주에서 중도(中道)와 연기(緣起)에 천착해 20여 년 그림을 그렸단다. 그는 2013년 작가 노트에 “행복과 불행, 자유와 구속, 사랑과 고통, 외로움 등을 꽃과 새, 물고기, TV, 자동차, 동백꽃, 노루, 골프 등으로 표현하며 나는 오늘도 그림 속으로 빠지고 싶다.”라고 적고 있다.
여행 후 주변 사람에게 제주 필수코스로 권하고 있다. 두 화백의 그림 감상 후 점심으로 먹은 해장국은 일품이었다.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며 바닷가 걷기도 좋았다. 근처에 있던 ‘성산 터진목’의 400여 4.3 희생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게 미안하다. 김소영 작가의 <어떤 어른>에 5학년 어린이가 “이상하게 요구르트를 마시면 일곱 살이 된 것 같아요.”라고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일출봉 아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어린아이가 된 듯했다.
다섯째 날, 배를 타고 간 수평선과 하나인 듯한 나지막한 가파도 일주와 청보리밭 걷기, 모슬포항 방어회는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오리 형태로 제주 본섬과 한라산, 마라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가파도’가 ‘가고파’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그곳에 가기 전에 유명한 해물 짜장과 짬뽕집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짜장은 나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중학교 입학 전 반 편성 고사를 치르고 교문에 나오자 십리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신 아버지가 서 계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 짜장을 사줬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짜장이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골목 어귀에서 중학생이 된 고명딸의 귀가를 기다리던 하늘의 어진 별이 되신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서, ‘가고파’로 부르고 싶은 걸까.
여섯째 날, 전날 사 온 매운탕으로 아침을 먹고 귀가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이번이 여섯 번째 제주 방문이었다. 여행의 목적이었던 걷기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걸었으니 어느 정도 만족한다. 제주 돌담과 어울려 핀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봉긋 솟아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사랑했던 수선화가 아른거린다. 4·3의 혼 빨간 동백도 눈앞에 선하다. 무엇보다 이왈종 화백의 그림에서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를 건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