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의 환대와 신뢰>
인간발달 디자이너 雲山 최순자.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공명재학당). 2025. 3. 7.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다. 내 마음도 기지개를 켠다. 마음만 먹고 미루고 있던 일을 위해 시내로 나갔다. 마트에 가더라도 잘 이용하지 않는 입구에 놓인 장바구니용 수레를 밀었다. 유산균, 잡곡밥, 사골곰탕 등 집에서 만들기 힘들지만, 몸에 좋을 만한 먹거리를 넣었다. 계산하면 보통 5만 원 전후였는데 배가 넘었다. 빈 종이상자 두 곳에 나눠 담았다. 그중 하나를 들고 우체국으로 갔다. 서울 막내동생네로 보냈다.
산정호수로 갔다. 주차 후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20분이다. 호수 둘레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철원에 태봉국을 세웠다가 포천에서 마지막을 보냈다는 궁예가 함께 했다.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 안내가 있었다. 누군가 엄중한 12.3(2024) 내란 심판을 ‘호수 위의 달그림자 좇는 것 같다’라고 해 말이 무성했다. 얼음이 녹은 호수에는 달그림자가 아닌, 궁예가 견훤에게 쫓기다 울었다는 명성산이 비췄다.
호수 둘레길 절반 정도를 걷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중년 부부를 만났다. “말씀 좀 여쭐게요. 여기를 다 돌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었다. “네, 제가 지금 절반 정도 돌았는데 30분 정도 걸렸거든요. 한 시간 정도면 돼요. 길이 좋으니 약간 어두워져도 괜찮을 겁니다.”라고 했다.
거의 끝나갈 지점에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잘될 거라 믿어요.”라고 써진 의자가 보였다. 글귀 옆에 빨간 동백 한 송이와 곰돌이도 그려져 있다. 위로와 칭찬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써줄 편지에 넣고 싶다는 생각으로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그러는 중 뒤쪽에서 얘기를 나누며 오던 분들이 나를 앞서간다. 이들도 중년 부부로 갈림길에 다다라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인다.
“어디 가세요.” “한화리조트요.” “그럼,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저쪽도 갈 수는 있는데 산비탈이 있어 지금 시간에는 조금 위험할 것 같아요.”라고 안내했다. 내가 앞서가고 부부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뒤따랐다. 목적지가 보이자 “덕분에 잘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오길래, “네, 좋은 시간 가지세요.”라고 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말한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지구별 여행자로 작은 환대를 했고 신뢰받았다. 그들도 어디선가 환대할 터이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