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서고 싶었던 그곳에 서던 날

by 최순자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다. 빨리 가고 싶었다. 그곳은 대학 모교 강단이었다. 나는 모교 학과 교수가 되고 싶어 대학을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대학은 국공립으로 등록금이 저렴하기도 했지만,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역사 관련 학과가 처음 만들어졌다. 개설학과로 선배가 없음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모교 교수가 되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민주화’라는 말이 화두가 아닌 현실이었던, 80년대 역사의 격동기는 나를 다른 길을 걷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바꿔, 바다를 건너 7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내가 다시 공부한 전공은 인간발달 중 영유아기 심리와 발달이었다. 대학 시절에 부조리한 사회와 지도자를 보면서 “왜, 우리 사회가 이럴까? 저들도 저게 옳다고 생각할 텐데, 저 사고는 어떻게 형성됐을까?”가 내 문제의식이었다. 결국 교육이 중요하고, 인간발달에서 인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기부터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학 졸업 후 국내에서도 다시 공부했지만,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늦은 나이에 동경 유학길에 올랐다.

귀국 후, 모교 은사님 한 분이 전공을 바꿔 공부한 제자에게 강의 자리를 배려해 주셨다. 내가 맡은 과목은 인간발달과 교육 관련 과목이었다. 교양이다 보니, 인문학 전공자뿐 아니라, 법학, 공학 등의 전공 학생들도 있었다. 강의 건물은 인문학도였던 내가 잘 가지 않았던, 낯선 공대 건물이었다. 화이트데이 때, 학교 앞 카페에서 어쩔줄몰라하며 유리병에 든 사탕을 건네주던 이가 공부했던 건물이었다. 강의하러 가던 중에 그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출석부를 보니 학부 학과 후배들도 있었다. 반갑고 기뻤다. 비록 학과 전공으로 만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바랐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학과 후배들은 학기를 마치고, 집으로 불러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강의 중, 솔직하게 내가 걸어온 길을 풀어 놓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지다시피한 스승의 날에 꽃다발, 사탕 등을 건네주는 학생들이 있었다. 가난하여 라면으로만 한 달을 살았던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농부의 딸인데, 거둘 자식이 많은 부모님을 생각하여 쌀을 보내 달라는 얘기를 못 했다. 내 걱정을 하시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다. 라면만 먹은 얘기를 듣고 어느 학생은 식당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에게 전한 모양이다. 그의 어머니는 양파 껍질만을 모아, 한약을 지어 보내주셨다. 청탁금지법이 없었을 때의 얘기다.


모교 강의를 몇 년 한 뒤 잠시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이 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엔에서 ‘방글라데시 신생아 사망률 줄이기 프로젝트 총책임자’를 모집하는데, 지원하겠다며 추천장을 써달라고 했다. 나는 쾌히 받아들여 기쁜 마음으로 써서 보냈다. 그는 내 수업 때 제3세계에 가서 교육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었다. 방글라데시는 신생아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이전에 방글라데시에서 컴퓨터 교육 관련 자원봉사를 한 경험이 있어, 영어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현지어도 가능하다고 했다. 영국에서 귀국 후 그가 떠나기 전 만났다. 방글라데시 사람이 손수 만든 액자를 건네주며 잘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의 수첩 속에는 '꿈 체계도'가 그려져 있었다. 최종 꿈 순서대로, 국제 리더자를 기르는 나눔의 일(60대)- 제3세계에서 교육활동(50대), 그 이전에는 관련 공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멋진 사람과 만남을 갖게 해준 모교에서의 강의를 잊을 수 없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이 어떤 일이든 설렘과 행복감을 준다. 앞으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자연 속에서 실컷 책 읽으면서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이어령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라고 했다. 지금은 이상이지만, 간절하기에 현실이 될 날도 있으리라고 스스로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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