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양육태도와 유아의 사회도덕성 관계-한일비교>는
내 박사 논문 제목이다.
1980년대 역사학도(학생회장)로 군사정권 지도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분들도 저게 옳다고 생각하고 할텐데. 저 사고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그러다 보니 그 사고를 하는 인간발달과 교육에 관심이 갔다.
대학 졸업 후 관련 공부 후,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때 동경 죠오치대(상지대)에서 개최하던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몬테소리교육만 가지고 3일간 발표, 워크숍 등을 진지하게 했다.
허연 머리의 노 교수, 원장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유아교육계에는 별로 없던 남성들도 많았다.
그런 장면을 보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995년 서른 셋이라는 늦은 나이에 유학갔다.
7년 동안, 동경에서
일본어, 몬테소리교육(AMI 국제교사자격 취득), 발달임상학, 유아심리를 공부하고
연구원 생활도 했다.
귀국 후 다시 교육심리도 공부했다.
아래의 연하장을 받은 곳에서
박사 논문을 쓰는 연구자에게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지원자격이 35세 이하였다.
나는 그 이상이어서 신청 자격이 없었으나,
나이 제한 밑에 빨간색 볼펜으로
왜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하고 있는지 이유를 썼다.
전국에서 2명 선발하는 데 나를 뽑아줬다.
서울과 동경을 오가며 교사, 부모들을 만나 박사 논문을 완성했다.
연구결과는 아이들은 사랑받는 확신이 있어야만 사회도덕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였다.
"사랑은 도착점이다."
사랑은 받는 쪽에서 사랑이라 느껴야만 사랑이다.
* 30년 대학 강의, 책(50여 권), 강연(1천 2백 회 이상)으로
40년 전 대학 때 품은
'건강한 사회 만들기'라는 화두를 위해 천착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인격형성기 아이들이 잘 자라야 건강한 사회가 되고,
사회와 어른들이 건강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신념이 있다.
1980년대 역사의 격동기 엄혹한 시기에
"이대로 죽어도 좋다."라는 생각을 갖고
공익을 위해 목숨을 걸었건만,
아직 내가 꿈꿨던 사회가 아니다.
이를 법, 제도, 시스템으로 풀고 싶어,
아직 배가 고프다.
20년 전 전국에서 2명으로 뽑혔다.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생각하며,
다시 1%를 가슴에 품는다.
주위의 기대와 응원을 받아...
"순자는 정치가가 될 것 같아!"- 고교 은사님
"신념이 강해서, 대기만성해서 큰 인물이 될걸세!"- 동경학예대 지도교수
"잔챙이가 아니쟎아요? 큰 일 하십시요." 유명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