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이태준>
“폐허의 시절 어찌 보내시나?”
“폐허가 된 마음으로 살지요. 모두와 똑같은 마음으로...”
1년 전 12월 3일 뜬금없는 계엄 선포 후, 윤석열 탄핵 선고 전이던 3월 마지막 날, 저녁 식사 후 대학 동아리 후배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는 환경 관련 공공 기관에 근무 중 울란바토르에 파견 나가 있다. 먼 이국땅에서도 내란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곧 귀국하게 된다며 자기가 있는 동안 다녀갈 수 있으면 다녀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몽골에 대한 몇 가지 안내를 했다. 몽골 여행은 6월에서 9월까지가 성수기이니 참고할 것, 4박 5일로 오는 게 좋을 거고, 비용은 2백 정도 생각하면 된다고 귀뜀했다. 인천에서 징기스칸 공항까지는 3시간 30분 걸리고, 공항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3시간 거리라고 했다.
항공료는 시기에 따라 50~70만 원이고, 게르에서 이틀 정도 머물면서 별 보기를 하면 좋은데, 보름 전후로는 달이 밝아 별 보기가 어려우니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말타기, 초원, 트레킹 일정은 2일 정도면 좋고 20만 원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호텔은 1박에 25만 원 정도인데 2일 생각하면 되고, 시내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렌터카는 하루에 120불로 총 600불, 80만 원 정도, 식대는 크게 들지 않는다는 등의 여행 정보를 줬다.
오사카에 있는 40년 지기 대학 친구와는 1년에 한 번 정도 여행하고 있다. 올해는 몽골 여행을 하기로 하고 동행했다. 서로 대학 강의를 하고 있고, 파견 나가 있는 후배의 상황도 있어 일정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다. 9월 초에서 중순에 거쳐 4박 5일 일정을 잡았다.
비행기표(40만)를 구하고 렌터카 비용(42만), 몽골 전통 공연 관람료(12만)를 보내고, 공항버스 예약(21,200원)도 해뒀다. 후배는 선글라스를 꼭 챙겨 오라고 했다. 미리 일정표와 입국 시 필요한 사항도 친절히 보내왔다.
일정상 보름 전후로 별 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몽골의 초원을 볼 설렘을 안고 떠났다.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은 몽골 공항에 세 시간 걸려 도착하니 후배와 운전을 해줄 담바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마트에 들려 게르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다. 식사는 1인당 약 1만 5천원 정도였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가다 차에서 내려, 초원 위에 서서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초원을 따라가다가 테를지국립공원 게르에 도착했다. 식당에서 준비된 저녁을 먹었다. 나는 돼지고기를 먹었다. 식비는 한국과 비슷했다. 저녁은 한 사람당 2만 원 정도였다. 초원 한가운데 만들어진 몽골 전통 숙소인 게르에서 2일을 머물렀다. 둥글게 가장자리에 침대가 3개 놓여 있었고, 세면대와 화장실도 있어 편리한 구조였다.
게르에 머무는 동안, 낮에는 주변 열트산 트레킹, 거북모양 바위와 아리야발 코끼리 사원 견학 등을 했다. 인상적인 바위와 종종 하늘을 나는 까마귀 등을 바라보며 걷는 트레킹이 좋았다. 별 따기는 못했으나, 커다란 달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지금까지 본 달 중 가장 컸다.
울란바토르 숙소로 오기 전에 징기스칸 마동상, 전승기념탑, 이태준기념관 등을 둘러봤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수흐바타르 광장을 거쳐 몽골전통 공연을 관람했다. 저녁으로 말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먹었다. 양고기의 부드러운 맛이 아직도 남아 있다. 시내에 잔 다음날 국립박물관, 국영백화점, 후배 사무실 등도 둘러봤다. 백화점에서는 잣과 발토시를 샀다.
몽골을 떠나오던 날 아침에는 호텔 인근에 있던 몽골국립대, 몽골과학기술대, 한몽학교, 한국몽골정보접근센터, 중국인 거리 등을 둘러봤다. 한몽학교에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고 새삼 몽골에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어를 머물면서 가르쳐 보고 싶기도 했다. 단 울란바토르 시내의 탁한 공기가 신경 쓰였다. 인구 360만이 주로 수도에 모여 살고 있기에 생기는 문제인 듯하다.
후배에게 “그동안 몽골 생활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라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엄마들이 아이들과 손잡고 다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라고 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태준(1883~1921)과의 만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태준기념관은 최근 개관했다.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필수 견학지로 했으면 한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다. 몽골 왕족과 귀족, 일반 백성을 가리지 않고 진료했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전달하는 역할 수행을 하다, 잡혀서 세상을 떴다. 몽골인들은 ‘은인 의사’, ‘위대한 의사’로 기억하고 있었다. 엄혹한 시기 목숨 건 활동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안식을 바라며 머리 숙여 묵념하고 왔다.
“나라 잃은 엄혹한 시기, 당신의 고뇌를 생각하자니 눈물납니다.
당신의 숭고한 그 뜻 할 수 있는 일로 이뤄가겠습니다.
편히 안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