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산고(産苦)는 따르지만 걷고 싶은 또 하나의 길

by 최순자


국민연금관리공단 노후설계지원팀 권우실 과장에게 글을 써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하다 올해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동화쓰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과 들에 초록의 향기가 가득하던 5월 중순, 우리 사회 아픈 곳을 들여다보는 송기역 작가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았습니다.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혁신교육과정을 출간할 예정인데 함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글과 책 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저로서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한 가지 부담스러웠던 것은 내가 맡을 학교에서는 동화로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동화 쓰기는 일찍이 관심을 두고, 쓰고 싶은 소재를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또 동화작가 강연을 몇 차례 들어보거나, 시나리오 작가에게 작법을 배워 문우들과 책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이야기 구성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동심리와 부모교육이 전공이라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도서관과 주변에서 동화책을 빌려 100권 이상 읽었습니다. 동화 작법도 공부했습니다. 해당 학교에 가서 며칠간 교사, 학부모, 학생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학교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 밑줄을 그어가며 샅샅이 읽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학교와 마을도 이곳저곳 둘러보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행히 제가 전하고 싶은 주제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 정도는 핵심 소재를 정하고, 줄거리를 구성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달 정도는 몇 차례 내용을 바꿔가며 써나갔습니다. 동화 쓰기를 제안해 줬던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 글쓰기 도반들의 조언을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쓰는 중에 인터뷰가 중요하다는 값진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가두고 창작의 혼을 불사르기 위해, 난생처음 대학가에 방을 얻어 며칠씩 보내기도 했습니다. 창작은 일반 글쓰기나 학술 글쓰기와는 달랐습니다.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간이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 있게 사건으로 풀어가고, 갈등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약 석 달간은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듯, 단 하루도 동화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운전할 때도 천천히 갈 수 있는 길을 택해 동화를 생각하거나, 창작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들었습니다. 퇴고한 동화 원고는 제 손을 떠나, 교육 운동을 하는 고창의 책마을 해리에서 편집, 나무늘보에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동화 줄거리는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 주인공 아이가 암소 ‘별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교사의 역할로 부모가 변하고 그 부모의 사랑을 받아 자존감을 회복하여, 자신의 ‘별’,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내용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 발달에 천착해 오면서 생각한 것들을 녹여냈습니다. 무척이나 행운이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이 나와 교육철학이 맞았고, 선생님들 인터뷰와 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례가 나왔습니다. 제 뜻을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아이들 마음을 잘 아시는 학교 선생님께서 따뜻한 삽화를 그려주셨습니다.


동화를 쓰는 동안 학교 아이들이 쓴 시를 제 전화기에 저장, 마음을 읽고자 수시로 읽었습니다. 때로는 시 속에 드러난 아이들의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 저렸고 눈물이 났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지구상의 상처받은 모든 아이를 의미합니다. 이번 동화는 이 아이들에게 바치는 제 첫 동화 작품입니다. 부디 교사나 부모들도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이들 행동은 어른들과의 ‘관계의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저만이 쓸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아 동화를 쓰고자 합니다. 그 길을 열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걸어가는 길은 학창 시절 즐겨 읊조렸던 시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중략)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하략)’

-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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