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를 낳을 나이에 아이를 처음 낳아서
늙고 약해진 몸으로 갓난아이를 키운다고 낑낑
아이와의 세대차이를 극복 못해 낑낑
혼자서는 못한다고 낑낑
사회화된, 지능화된 사회에 오래 살다보면
인간은 스스로 동물이었음을 망각한다.
생물학적나이와 성을 불편해하고
사회적나이와 젠더를 더 편안하게 느낀다.
아들을 낳기 위해 아이 넷을 낳으셨던 내 친구의 친정엄마가
너는 왜 아들 하나를 더 못낳냐며, 지금이라도 하나를 더 낳으라고 잔소리를 하신단다.
그 엄마가 막내를 낳은 나이는 서른두살.
내 친구가 첫아이를 낳은 나이는 서른두살.
내 친구의 지금 나이는 서른아홉살.
손주볼나이에 자기애 하나 키운다고 낑낑
며느리볼나이에 꾸역꾸역 집안일 쳐낸다고 낑낑
늘어나는 흰머리를 염색으로 가린다고 낑낑
어느 동네를 가도 중고등학생 여자아이들은
지나가는 꼬마아이를 보며 까르르까르르
귀엽다, 이쁘다, 만져봐도 되요?
그래. 그 나이가 원래는 아이를 귀여워하고, 그래서 제 아이를 낳고 기를 나이였던 거다.
그게 인간의 생물학적 적정 가임기였던 거다.
그 여자아이들 나이의 두배를 제 자식 없이 살다보면
지나가는 꼬마아이들을 봐도 감흥이 없고
오히려 평온한 자기삶을 방해하고 불편을 끼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거다.
육아가 힘들 수밖에.
나와는 너무 멀게 느껴질 수밖에.
생물학적으로 손주 볼 나이에 제 자식을 키우려니 힘에 부칠 수밖에.
제 자식을 키울 때는 뭣도 모르고 키우고
손주들에게 지혜를 나눠주며 선한 역할을 해오던 할미들이
늘그막에 제 자식을 키우며 모든 걸 다 해주려 하고 물리적인 노동까지 하려니 정상이 아닐 수밖에.
우리는 모든 늦둥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역으로 초보부모다.
우리 늦둥이들은 같이 자라는 동년배의 조카들도 없이,
부모의 능숙한 육아도 없이, 힘겨워하는 부모들 밑에서 자라고 있다.
출산장려도 장려지만
출산시기의 문제가 더 커보인다.
늘그막에 늦둥이를 첫아이로 키워야 하는 문제 자체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진짜로 너무 힘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