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전업맘의 하루는 아직도 아쉽다

by 스윗제니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내일 아침 '또' 시작해야 할 일과를 앞두고 폰을 들여다보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철없는 애도 아니고, 책임감이야 말로 일생 중 가장 높은 한 때인데, 이 시간만 되면 유독 자기자신에게 무책임해진다. 내일의 피곤과 무기력증은 어쩔 것인가?


처음엔 이런 자기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인격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남편은 밤늦게 폰보다 늦게 잠들어서 아침에 피곤하다 말하지 말고, 애 없는 오전 시간에 놀라고 핀잔을 준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오전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지만 묘하게 '자기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에는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동네 엄마들을 만나 차를 마시고 놀다 와도, 그 자체가 놀이라기 보다 일로 느껴질 정도다.


온전한 내 시간이 아니어서 그렇기도 하다. 집에 혼자 있긴 하지만 집안 사람이나 지인 중 누군가가 일이 생겨 부르면 달려나가야 할 수도 있고, 아이가 아파서 집에 머무르면 곁에서 돌봐야 할 때도 있다. 오전에 혼자 있는 시간은 '다른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 스탠바이 시간'이다.


사람은 해가 떠있을 때 일을 하고 싶고, 또 실제로 일을 해야 한다. 수백만년 동안 그렇게 길들여져왔기 때문에 그런 사이클이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다 새겨져 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생체적으로도 잘 맞다. 낮에 일하고, 밤에 쉬거나 놀아야 된다는 이 단순한 생활리듬은 내가 의지로 바꾸거나 고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사람의 '일과 사이클'이 단순 습관이 아닌 생체적인 영역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8년전 쯤이다. 지독한 잠순이였던 나는, 전반적으로 잠이 많았고, 언제든 자고 싶으면 잘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잠은 나에게 있어서 '완벽하게 통제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임신 중 유산기+조산기로 인해 장장 9개월간 누워있는 생활을 하다가 극심한 불면증에 걸리게 되었다. 그 당시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치료를 받던 중 '인지행동치료'라는 것이 있었는데, 거기서 수면리듬과 호르몬 분비 사이클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이 하루종일 누워있으면 뇌는 '이 사람에게는 휴식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인지하게 되고, 제일 먼저 '잠'에 대한 지향을 줄여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잠드는 시간이 계속 늦춰지면서 수면리듬이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런 날들이 누적되면 어느순간 수면리듬이 완전히 깨지게 되어서 몇날 밤을 새도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유희에 대한 지향도 이와 비슷하다. 휴식과 유희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진행해야 유의미하다. 유희는 더 잘 휴식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유희로서 신체를 이완시켜나가, 몸이 더 잘 휴식할 수 있는 준비상태를 만드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한창 신체적 활동성이 왕성한 낮에 가만히 앉아서 폰을 들여다보고 놀거나 드라마를 보며 휴식하는 활동은 사실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고, 그걸 해봤자 잘 놀았다는 개운함도 별로 없다. 누군가 오전시간을 매일같이 무의미하게 쓴다면, 그 사람은 이미 만성무기력증에 빠진 상태일 것이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한숨 돌리면 본격적인 '업무시간'이 찾아온다. 아이를 케어하고 길러내는 시간. 이 업무시간은 시작은 분명하나 끝은 불확실하다. 일단 모든 가족구성원이 일과를 마치는 그 시간까지가 공식적인 업무시간이다. 될 수 있으면 모두가 다 잠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완벽한 끝이니까.


그런데 업무시간 종료와 동시에 강제취침시간이 찾아온다. 나도 같이 자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잠들기는 매우 억울하고 아쉽다. 나는 아직 못쉬고, 못놀았기 때문이다. 자기들만 쉬고 놀고 속편히 잠도 자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아직 수면으로 들어갈만큼 몸이 이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직전까지 일하고 있었으니까. 그 일이 실체없는 감정노동이었을지라도.


한심한 엄마들이나 이런다고? 여자들이 다 그렇지 뭘이라고? 아니다. 소위 3교대를 하는 야간근무, 새벽근무자들도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인다. 밤새 근무하고 천근만근인 몸을 빨리 뉘여 기절하듯 잠들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그들은 아침 퇴근길에 해장국집에서 모닝소주를 들이킨다.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잠자리에 누우면 잠이 잘 안든다고 한다. 술기운에라도 자볼까 싶어 한두번 모닝소주를 시작했는데, 습관이 되어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업무를 마친 후에는 일정한 양의 휴식과 이완시간이 필요하다. 될 수 있으면 휴식시간에 유희를 즐겨 완전한 이완을 이룬 후 잠들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 잠드는 것은 간혹 발생하는 일이지, 일상적인 생체리듬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너무 피곤하면 그 피곤한 몸을 이완시킬 휴식시간이 필요하고, 어느정도 휴식이 완료된 후 수면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자아의 핵심부분에 바로 꽂히는 유희 활동, 바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보내는 개인 시간'. 이 시간이 모든 개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데, 전업맘들에게는 이런 시간이 전혀 안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옳지 못한 시간에 주어진다. 그래서 그 시간의 쓰임 효율이 낮다. 그래도 그런 시간이 전혀 없는 극한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좋은 팔자다. 그래서 불만을 가지면 안될 것 같은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문제는 '인지부조화'다. 사람들은 나에게 늘 논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나는 일하지 않고 집에서 노는 것 같은데 왜 실컷 잘 놀았다는 완벽한 인정이 안될까. 그 부분에 대한 설명과 납득이 매우 필요하지만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걸 경험해본 사람은 심리학, 의학, 인류학 전문가가 아니고, 전문가들은 전업맘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업맘들이 놀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면서도, 왜 새벽 두시까지 폰을 보며 잠을 못자는 지에 대해 꼭 한번은 분석과 해석을 해보고 싶었다. 화끈하게 일하지도, 제대로 놀지도, 마땅히 쉬지도 못한 채 하루이틀, 그리고 1년을 보내는 당신은 잠든 채 없어져버릴 한두시간이라도 아쉽다. 실컷 놀고도 못놀았다는 억울함이 가득한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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