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대로 못사는 것은 내 탓인가

by 스윗제니

누구나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는 결국 같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유복하게 잘 먹고 잘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 모두의 꿈이다. 한 줄 요약이 너무 간단했는가? 사실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종합해 놓고 보면 신기루 같은 꿈인데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어느새 우리 일상에 꽤 지배력 있는 패러다임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건강을 '관리하는 것'으로 인지하기 시작했으며, 잘 먹고 잘 사는 것 역시 '능력'만 키우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뿐인가? 죽음의 존엄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죽는 방법'에 대한 각자의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마음 속에 그리고 산다.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는가? 문제는 '이상'을 '표준'으로 인지하고, 정상범위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잘못된 것'으로 배제하려하는 인지부조화의 폭력성이다. 건강은 원래 개인이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능력이 있다고 부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더더군다나 죽는 방법을 누가 결정할 수 있겠는가?


자주 아프고 비실대는 사람은 건강관리를 못하는 사람이고, 임신해서 살이 찌는 임산부는 무절제한 사람이며, 고스펙 실업자로 사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큰 병원을 전전하고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며 자식들에게 막대한 병원비의 짐을 지우는 부모는 추한 노년의 전형일까?


이는 마치, 인간은 원래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존재인데, 개인의 나태함과 무능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리함은 개인의 탓이니 감수해야 하고, 또 배제당해도 불만을 갖지 말라는 집단의식인 것 같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제대로 못살게 되어 있는 것이 '정상의 삶'이라고. 철학자들이 좋아하는 말인 '자연상태'라고.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자연을 통제하는 데 성공하다보니, 인간 스스로도 통제할 수 있다는 전능감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시간도 인생도 자아도 모두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최근 나는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친구의 딸이 큰 사고로 몸을 많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구는 자신의 딸이 워낙 천방지축이라 늘 사고의 위험을 달고 산다며, 애들을 키울 때는 항상 지켜보고 관리를 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애들을 키울 때 항상 지켜보고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사고를 막을 수 있냐 없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사고도 있지만 아무 이유 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사고가 절대적으로 더 많다. 어떤 학자는 인류에게 닥치는 재난에 어떠한 수학적 법칙이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염세주의적 결과인데, 일어날 사고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해당 연구는 재난을 예방하는 것보다 수습하는 데에 더 주력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씁쓸한 결론으로 마무리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건강관리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은 손쉽게 관리될 수 없는 것이다.

내 몸무게는 평생 일정수준으로 유지되어야만 정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노화에 따라 체중은 늘기도, 줄기도 하는 것이다.

죽는 방법과 시기는 절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

내가 제대로 못사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완벽하게 제대로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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