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도 '우수한 인재'의 조건을 '뛰어난 지능'이나 '탁월한 소질'에 한정하여 생각했었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사회 전체도 그렇게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모두 아이큐 상의 1%의 영재들인 것은 아니며, 정작 멘사 출신 천재들은 종종 우리가 보기에는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해낼 수 있는 ㅇㅇㅇ'란 제목의 수기나 경험담이 왜 그토록 나에게는 먹히지 않는 것일까? 겉보기에는 그 사람이나 나나 비슷하게 평범해보이는데, 도대체 왜?
나는 이러한 의문의 실마리를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서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다. 보통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개념이다. 어린이집 입학 설명회나 상담 시 원장님들이 설명해주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지능은 단순히 '인지적이고 논리적인 지능'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며 총 8가지의 영역으로 세분화된다고 한다.
가드너는 지능이 높은 사람은 모든 영역에서 우수하다는 종래의 획일주의적인 지능관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이 서로 독립적이며 상이한 여러 유형의 능력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가드너에 따르면
① 언어(linguistic), ② 논리 수학(logical-mathematical), ③ 공간(spatial), ④ 신체 운동(bodily-kinesthetic), ⑤ 음악(musical), ⑥ 대인 관계(interpersonal), ⑦ 자기 이해(intrapersonal),
⑧ 자연 탐구(natural) 지능의 8개 유형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한 가지씩 읽어보면 이론적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언어를 잘하는 사람, 수학을 잘하는 사람,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 등 우리가 살아오면서 무수히 봐왔던 '특정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 몇몇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데 처음 등장하는 6가지의 능력들은 '특정분야의 영재'들로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지만 7번과 8번을 읽는 부분에서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보통 자연 탐구 지능은 파브르나 린네와 같은 사람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고 자기 이해 지능은 종교인들을 떠올리며 대충 넘어간다. 어차피 우리 애한테 해당될 사항이 아니므로.
그런데 여기서 잠깐 멈춰야 한다. 다중지능이론은 비단 내 아이의 재능을 찾아주는 데 참고 지표로 대강 알고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이해 지능'. 어떤 곳에서는 자기 성찰 지능, 또는 자기 통제 지능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기 이해 지능은 도대체 무엇일까? 입시나 학교 교과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지능은 어디에 쓰이는 것이며, 가드너란 사람은 굳이 왜 이런 지능을 별도로 분류해놓은 것일까?
내가 이해하고 경험하고 결론내린 바에 의하면, 이 자기 이해 지능은 일종의 인생 치트키다. 뭔가 타고난 재능이 적더라도, 자기 통제 지능이 높은 사람은 '노력'과 '성찰', '수양'으로 원하는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 그 수많은 '난 평범했는데 ㅇㅇㅇ를 해냈다'고 간증하는 경험담들이 바로 이 높은 '자기 이해 지능'에서 출발한다. 중학교때까지 반에서 중간 정도 하던 학생이 막판 스퍼트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한다던가, 철저한 자기관리로 암을 이겨냈다던가, 피겨 불모지에서 세계 정상의 피겨선수로 나홀로 우뚝선다던가 하는 결과들은 뛰어난 자기 성찰 지능, 자기 통제 지능의 발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기 이해 지능이 뛰어난 소질과 결합되면 '영재'성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천적인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이해 지능을 타고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자기관리'가 잘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요'의 레파토리에서 주목할 점이 바로 자기 이해 지능의 부족이다. 타고난 소질의 발현과 최종 결과물은 항상 정비례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이해 지능은 누구나 타고나는 지능이 아니다. 그러니 '그 평범한 사람'이 해낸 일을 내가 못하는 것은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