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나오고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특정분야의 업무를 하며 살아왔던 30여년간, 나는 '보통사람'이라고 하면 나처럼 대학나오고 직장다니는 사람을 떠올렸다. 기업에서 소비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정계에서 '시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으레 대학나오고 직장생활하는, 직업가진 사람들이겠거니 했다.
나를 둘러싼 수평적 관계에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으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인지하는 보통사람이란 정말로 '나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거의 모든 국민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마케팅하는 사람이었으니 '사람들'을 '우리 회사제품의 소비자'로 여기는 경향도 강했고, 기업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수직적으로 '내려다보는' 시선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난임과 조산 등 임신의 험난한 고비를 거치면서 전업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워낙 하던 가닥이 있는 사람이라 집에 앉아서 애만 키우진 못했고 사업을 하건 알바를 하건 하며 지속적인 자아찾기 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으나 나의 경제활동이나 경력의 단절유무보다 훨씬 더 중요한 통찰의 시간이 바로 전업맘 생활을 통해 주어졌다.
직장에 나가지 않고 아이를 집에서 키우는 활동, 즉 전업맘 생활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다른 전업맘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리고 오전이나 낮시간에 동네를 다니게 된다. 늘 붐벼서 사람에 치이는 것이 일상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지끈거리는 번화가나 테마파크 같은 곳들도 평일 낮시간에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수평적 시선'으로 '진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그곳에 있었으나 내가 인지하지 못한 '범주 밖에 있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대학도 못나오고 직업도 없지만 어엿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평일 낮에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는 장년층의 남자들, 강아지와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 주요일과인 어딘가 조금 아파보이는 겉멀쩡한 사람들, 돈은 못벌지만 쇼핑센터에 나와 여유로운 점심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1년에 한두번도 거의 마주칠 일 없었던 옆집 사는 사람들, 아랫집 사람들, 우리 라인에 사는 사람들, 얼굴을 기억할 필요조차 못느꼈던 우리동네 경비아저씨, 똘똘하고 영민해보이지만 그냥 그렇게 낮시간을 카페에서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는 젊은이들,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가방을 메고 이학원 저학원으로 이동하는 학생들, 그냥 매일 같은 곳을 걸어다니는 사람들, 사람이 그리워 이 가게 저 가게 들어가 푼수처럼 말붙이다가 영업방해로 쫓겨나는 사람들...
나와 상관없고, 몰라도 괜찮고, 존재 자체를 알 길이 없었던 무수한 범주 밖의 사람들. 통계에 잡히지도 않고, 여론조사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는 사람들, 꿈을 찾으세요,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보세요라고 권유하는 입이 오히려 민망해지는 사람들, 그러나 엄연히 자신의 자아와 시대의식과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들.
능력이 없어도 사람이다. 실력이 없어도 사람이다. 노력을 할 수 없어도 여전히 사람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지체장애인이건 지적장애인이건 백수건, 거지건 자기를 위할 줄 알고, 좋은 물건을 고를 줄 알고, 좋은 대우를 바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겪어보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직장의 울타리, 직업의 위선을 벗고 나니 드디어 '자연 상태의 인간세상'을 조우하게 되었다. 일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인 줄 알았던 나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고 껍질이 깨어졌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범주밖의 사람들의 실체를 알고 나니 대학나오고 일하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바둥거림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언젠가 모두가 돌아가야할 그 곳. 육체의 정력과 업력의 정년과 신분을 모두 내려놓고 돌아가야 할 그 곳. 바로 내가 사는 동네라는 새로운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