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제니 Mar 12. 2023

'이유'에서 늘 배제되어 있는 남편

"우리 ㅇㅇ이가 사달라고 넘 졸라서 샀어."

"운동을 안 하니까 기운도 없고 건강도 나빠지는 것 같아서 정액권 끊고 시작했어."

"철이 바뀌었는데 도저히 입을 게 없어서 하나 샀어."

"옆집 ㅇㅇ네도 가지고 있는 거라 어쩔 수 없이 맞춰줬지 뭐."

"우리 ㅇㅇ이가 너무 배고프다고 난리를 치는데 어떡해. 하는 수 없이 사줬지."

"나를 위해 산 건 하나도 없어. 이거 봐. 다 우리 모두를 위해 너무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산 거야."


듣고 있는 남편의 얼굴은 반은 의심, 반은 수긍하며

아이를 위해 돈이 쓰였다는 대목에선 빙긋 미소가 띄워진다


매일 발생하는 '소비의 이유'들

그 어느 것 하나 타당하지 않은 소비가 없다.

너무나도 지당하고 합당한 소비의 사유들.


이유만 갖다 붙이면 뭐든 이렇게나 합리적이 된다.


정작 벌어오는 사람은 남편인데, 남편을 위해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소비의 이유들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남편은 직장에서 어차피 밥이 나오고

남편은 직장에서 어차피 회식비가 나오고

남편은 직장에 어차피 하루종일 갇혀 있어 운동할 시간이 없고

남편은 어차피 출퇴근만 하고 누굴 만나지 않으니까


옷도 필요 없고

맛있는 것을 먹일 필요도 없고

대충 깔끔하게만 하고 다니면 되고

취미생활을 할 시간도 없고

잠만 편히 재워주면 괜찮은 것 같고

그저 하루하루 평온하게 넘기면서 다음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사야 할 이유보다 안 살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렵다.

다 사람의 손발로 대체해야 하는 것들이기에.


아이를 위한 소비는 언제나 면죄부다.

우리집의 수입과 형편과는 항상 별개의 문제로 굴러간다.


자성과 각성의 외침은 언제나 아프다.

내 살을 도려내야 될 만큼 뼈저리기도 하다.


열 개 더 거저 생기는 것보다

하나 빼앗기는 것이 훨씬 아깝다.


작작 좀 써야겠다.

작작 좀 갖다 붙이고.

돈 벌어오는 남편도 좀 챙기자.

매거진의 이전글 손해는 진짜 손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