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이 모여 제도가 되기도 하지만
제도 때문에 인식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내가 평소에 참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신축 아파트 지상 차량 출입통제 컨셉
민식이법
보행자 우선 도로교통법
이 3가지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데 굳이 3가지를 꼽는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주의력이 없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밖에 나갈 땐
1차적으로 부모가 통제하고 보호해야 한다.
부모의 책임이자 의무이고,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5% 정도 부모가 찰나의 순간을 놓칠 수도 있고,
부모가 CCTV도 아닌데 1분 1초 아이를 감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부모의 책임과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가해자 100%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순간의 실수를 해버린 가해자는 무슨 죽을 죄며,
1차적 보호관찰 의무자인 부모의 책임은 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며,
아이들은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1명도 없기에
나의 문제의식을 주절대본다.
신축아파트 지상에 차없는 컨셉을 도입한 것까진 좋다.
차 없는 마당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제도는 의식을 제압하기에
'전반적으로 차가 없는 컨셉'을 지향하던 처음의 의도가
차가 1대도 지나가서는 안되는 '감시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렸다.
차는 당연히 다녀서는 안되며,
오토바이, 택배차가 다니는 꼴도 보기가 싫다.
왜냐면 우리 아파트는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 신축아파트이며,
이런 컨셉은 집값과도 연결되고,
또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타협불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타협불가'하다는 단어에 밑줄을 그어보자.
왜 타협이 안되는 것인가?
무엇을 지키려고?
정말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니면 본인들의 자존심을 위해?
오토바이가 아파트 단지에 왜 출입하는가?
본인들이 배달음식을 시키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오토바이들을 욕하고, 오토바이들을 통제하려고 한다.
상생, 공생이란 가치는 개나 줘버린 것인가
빨리 배달 와달라는 배송메시지를 적을 때에도
아이들의 안전과 차없는 지상컨셉에 대한 한결같은 고민이 있는가
지상에 차를 못다니게 하면 오토바이는 빨리 올 수 없다
시야가 사방팔방 막혀있는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는 절대 빨리 올 수가 없다.
배달 오토바이의 안전은 극도로 위험해진다.
지상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비 오는 날 지하주차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오토바이는 2륜차다.
미끌거리는 지하주차장에서 시야가 막힌 채 배달을 해야 되는데
안전운행이 가능할 리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날은 배달이 더 몰린다.
그런데 어떤가? 어차피 내가 알 바가 아니잖아?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해맑게 뛰노는 웃음이 더 중요하니까.
민식이법이 악법인 이유는 이미 전국민의 공감대가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서도
아이들이 교통안전과 교통법규를 숙지하고 지키는 시기를 10년 정도 뒤로 미루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애들이 일상적으로 주의력과 민감도가 떨어진 채 길거리를 다니게 된다는 것인데,
아이들이 어린이 보호구역만 걸어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닌 곳에서 갑자기 주의집중력을 발휘해서 극도로 차를 경계하며 다니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람에겐 항상성이라는 게 있어 늘 하던대로 살게 되는데,
일상적으로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고 살다보면 위험한 순간에도 역시 그렇게 반응하게 된다.
아이들은 보호해야 되는 존재임과 동시에 가르쳐야 되는 존재고 배워야 되는 존재다.
아이들의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고 가르치는 부모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행자가 차에 비해 약자인 것은 당연하다.
누가 아니라고 할까?
충돌이 일어나 누군가가 다치고 부서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나 인간은 약자다.
하지만 '법'이 방패막이가 된다면 강자와 약자의 위치는 쉽게 뒤바뀔 수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사는 시대에는
보행자의 의무나 주의력이 상당히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런 의무나 위험회피책임에 대해 '면책권'을 쥐어주니
말 그대로 길거리는 동물의 왕국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많이 짖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펼쳐질 것이다.
차를 모는 사람도 언제든 보행자가 될 수 있고,
보행자들도 언제든 운전대를 잡을 수 있건만
서로에 대한 입장고려나 배려는 없게 될 것이다.
어떤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고 인식을 전환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고 옳다.
하지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100:0을 주장하는 자들의 공산당식 선동이다.
세상에 100:0은 흔치 않다.
무책임하고 아무 생각없고, 심지어 악의를 가진 사람들이 약자의 탈을 쓰고
우연히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벼랑끝으로 몰아갈 수 있는 제도는 존재해선 안된다.
무서운 강력 범죄를 짓고도 심신미약이니 하며 가벼운 형벌을 받는 사건이 흔해 빠진 우리나라에서
유독 특정 약자 집단에 대한 가해행위에 대해서는 인정사정자비도 없이 인생을 갈아버려도 된다고 몰아가는 그 잔인성.
정말 약자를 보호하고 싶은 측은지심 때문인지
본인들의 자존심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알량한 실익 때문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측은지심은 늘 규격에 맞는 약자들에게만 발현되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