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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Feb 21. 2023

정유라는 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될 수 없었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보상심리'


우리나라는 전통 귀족사회와 단절된 새로운 나라다.


조선시대의 양반계급은 '족보'만을 남겼을 뿐

후손들에게 주식회사나 산업용토지, 건물을 물려주지 못했다.


조선의 부자들은 당대의 유일한 생산수단이었던 '농지'를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지

현대식 부동산과 현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농지를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토지개혁 때 대부분의 농토를 소작인들에게 앗(?)겼기에

자본주의 대한민국이라는 새시대의 흐름에 영합하지 못한 경우

거저 대한민국의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대대손손 거부였던 상당히 많은 양반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대느라 가산을 탕진한 사례마저 수없이 목격되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돈 좀 있다고 보여지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빈손'에서 시작한 사람들이다.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부모세대에서는 빈손, 가난, 평범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전통사회인 조선에서 일제강점, 전쟁을 거치면서

기득권과 부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출렁거렸고

다른 나라처럼 십수대에 걸쳐 조상덕으로 잘 사는 사람의 존재는 우리 일상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 잘나간다는 집안, 개인들은 거의 한두세대, 서너세대 안에 일어난 사례들이 정말 많다.


그 래 서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을 기득권 또는 부자라고 인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사회에 비해 현저히 낮아 보인다.


지금 현재 돈이 좀 있더라도 그 돈을

지난세월 맨손에서 개고생하며 일군, 자신의 전체 인생 그 자체이며 헌신의 댓가라고 생각하지

그것을 절대 불로소득 또는 기득권 또는 나눠야 할 공공의 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년시절을 어렵게 보낸 사람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정체성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현재 100억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상류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자아의식 밑바탕에는 하루하루 부자로 살아가는 나날들에 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투쟁하며 지키지 않으면 날아갈 수 있는 것이 재산이니까.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기대하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소위 보수우파+기득권이라고 불려왔던 사람들의 기저 심리가

거의 이런식이다.

자신들의 재산을 투쟁하며 지켜내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똘똘뭉쳐 보호하려는 심리.

천성적으로 악마여서 그런게 아니라 보상심리여서 그렇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되려면

정유라처럼 처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유복하게 자라서

없이 사는 사람들을 봤을 때 측은지심을 느끼며 자기 것을 나눠줄 수 있는 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헌데 정유라는 '없이 살던 과거'를 가진 부모가 있었기에

그런 가치관을 물려받지 못했다.

현재 이 땅의 무수한 정유라들은 부모로부터 '피해의식'을 가열차게 물려받고 있는 중이다.

자신들이 맨손에서 창조한 부를 거지떼들이 강제로 빼앗아가려 한다는 피해의식


없이 살던 과거를 가진 부모는 자식에게

우리 것을 악착같이 지켜내야 하며, 없이 사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부모세대가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했을 때

경쟁에서 이긴 자신들은 부를 누리게 되었고

같은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이 현재 없이 살고 있는 것이 그들 시선에선 맞으니까.


제목을 민주주의라고 적었지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실은 공정사회를 말하고자 함이었다.

민주주의는 왕이 없다는 그 자체로 성립하기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개념이다.


보상심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공정사회는 꿈도 꿀 수 없다.

이명박식 보상심리건

586운동권의 보상심리건

보상심리가 존재하는 한 공정사회는 실현되기 어렵다.


동일한 보상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늘 편을 만들어 똘똘 뭉치며

법에 손을 대고, 자신들만 아는 행정적 기회를 창조해낸다.


그러고도 양심의 가책은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행위가 일상적인 부정과 부도덕이 아닌

뭔가를 희생했던 과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니까.


비단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만나는 '아무나'와 대화를 해보아도

자신들이 벌이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사소한 범법 행위들은

'그동안 고생만 엄청했는데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는 셀프 보상판결이 이미 내려져 있는 상태다.


기득권들은 자신들을 기득권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사소한 부정과 도덕적 해이는 셀프 보상판결에서 이미 무죄 선고가 내려지는 나라.


아직 건국한 지 100년도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건국초기의 진통이라 보여지고

보상심리가 희미해질 때쯤에는 이미 양극화가 극단화되어 나라에 망조가 든 이후겠지.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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