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만 48개월, 준이가 네 돌을 맞이했을 때의 일이다. 유치원에 다닌지는 6개월여가 되어갔던 그 때,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어색한 존댓말을 조금씩 시작하더니 곧 며칠 만에 완벽한 존댓말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엄마아빠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라고 강요한 적도, 가르친 적도 없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조심스러운 태도로 존댓말을 쓰니 어색하기도 하면서 대견한 마음이었다. 아마 유치원에서 선생님께 배운 것이리라.
이제 본격적으로 '어린이'가 되어버린 듯한 내 아들. 그전과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첫돌, 두 돌, 세돌 때도 느꼈지만 아이들은 돌이 지날 때마다, 또 해가 바뀔 때마다 신기한 성장을 한두 가지씩 해내는 것 같다. 네 돌때 역시 전에 안하던 짓 몇 가지를 갑자기 하기 시작했는데 기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1. 존댓말 사용 시작
우선 가장 놀라웠고 당황스러웠던 변화가 바로 '존댓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한 번도 엄마아빠에게 존댓말을 쓰라고 얘기한 적도 없었고 가르쳐준 적도 없었는데 정말 칼자르듯 어느 날부터 갑자기 존댓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우리 아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하루 종일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가 궁금해진 나는 왜 갑자기 존댓말을 쓰느냐고 물었는데, 그냥 유치원에서 그렇게 배웠다는 말만 툭 던질 뿐 속 시원한 해답은 들을 수 없었다. 유치원에서 시키는 모든 것들을 이렇게 철석같이 지키는 걸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무언가 아들의 내면세계에서 '존댓말은 좋은 것' 또는 '존댓말은 꼭 해야 하는 것'이란 체계가 작동했을 것이고, 생각을 바로 행동에 옮긴 것이었을 게다.
헌데 아들이 우리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니, 나도 아들을 더욱 더 존중하게 되었다. 아들을 더욱 더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게 되고, 같이 존댓말을 써주기도 하는 등 아들의 말투가 변함에 따라 '관계'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부부관계에도 적용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갑내기 부부인 우리들은 서로 배려 없는 말투를 사용하는 턱에 잦은 싸움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부부간 존댓말 쓰기 프로젝트는 사흘도 못가 종결되고 말았다.
2. 자기가 한 말을 따라하면 화냄
또 하나의 변화는 자기가 한 말을 따라하면 화를 낸다는 것이었다. 자아존중감이 생겼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가령 이런 상황들이 발생한다.
아들이 혼자 터닝메카드를 가지고 놀면서 혼자 역할 놀이를 하면서 중얼거린다. 그런 말들 중 웃긴 말이 있어서 내가 따라한다. 그러면 불같이 성을 낸다.
"따라하지 마요!"
라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우습다는 듯이 따라한 행동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뜻이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음을 느꼈다는 의미다. 점점 어른과 같은 정서를 가지게 되어가는 것 같아 짠한 마음이 들었다. 품안의 아기였던 아들이 점점 자라서 이제 눈높이를 맞추고 마음과 마음을 마주하며 대화할 날이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자기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분노함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만화영화 주제곡에 아이 이름을 넣어서 부르며 장난치는 것을 즐겨해왔었다.
가령 '용감한 구조대 로보카 폴리~'를 '용감한 준이 로보카 준이~'로 바꿔부르며 노래 가사를 개사하는 것을 즐겨해왔었는데 48개월이 지난 후에 그런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자기 이름의 소중함에 대해 인식하고 자기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아들을 보며 '아, 드디어 자존감이 형성되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자기 이름이 곧 자신을 뜻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아이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 시기에 자존감을 잘 형성해주어야 앞으로 평생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뿌리가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 이름이 가질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식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바로 부모가 본을 보이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5가지 말
사랑해
고마워
소중해
미안해
최고야
요즘 육아 트렌드는 아이의 자존감 높이기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존감은 자기의 가치를 자기 스스로가 존중해주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한편,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하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 지 신경쓰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존중해주고 자기 가치를 다져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년시절 부모로서 정서적 지지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원없는 사랑, 한없는 사랑을 받고 정서적 지지를 받게 되면 자존감이 자라나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게 된다. 반면, 어린 시절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라나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평가나 목적의 성취를 통해서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해져, 결과지향적 인간이 되기 쉽다.
만 48개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자존감이 자라나게 된다. 이 때에 부모가 아이의 행동이나 말을 잘 관찰하고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충분히 해준다면 긍정적인 자아상이 형성될 수 있다. 옆집 아이와 비교하거나, 무리하게 한글을 가르치며 ‘이 것도 모르냐’고 구박하는 등의 행위는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아이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과제를 주고, 이를 성취하게 유도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조건없는 사랑이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성공시키거나 칭찬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부모는 여전히 널 사랑한다는 느낌을 아이에게 심어줘야 한다. 이런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은 뇌발달로 이어져 풍부한 사고력을 가진 아이로 자라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