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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Sep 02. 2017

6살이 되니 폭력성이 커진 아들

준이는 2017년 1월 1일 6살이 되자마자 세상을 다 가진 난봉꾼처럼 굴기 시작했다. 자기가 6살이 되었으니 모든 결정권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 위에 있기라도 한 듯 생각하는 듯 보였다.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꽥꽥 소리를 지르며 호통을 치고, 상대방 약을 올리기 위해 일부러 못되게 굴기도 했다. 지난 1년반 화안키를 하며 아이를 평화롭게 키워왔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5살 때에는 군말없이 잘 해왔던 행동들도 하나하나 토를 달거나 하기 싫다고 고집을 부렸다. 처음 아이가 6살이 되고 2주간은 공포스러운 패닉의 나날들이었다. 극약처방으로 1년 반동안 내지 않았던 화를 내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화안키 모드로 돌입하여 끈기있게 아이를 설득하고 기다려주었다. 한 2달여 만에 아이는 다시 제자리에 가깝게 돌아와 주었다. 나도 더 이상 화내거나 혼내지 않고 아이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예쁜 목소리로 좋은 말만 하며 지내는 것이 훨씬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무조건 반항기’ 2달이 지난 후에는 폭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상은 바로 ‘아빠’였다. 아빠와 몸놀이를 하며 놀다가 아빠가 이길 것 같거나 아빠가 마음에 안들게 행동을 하면 가차없이 아빠를 때려주기 시작했다. 아빠가 워낙 친구같이 놀아주다 보니 아이 마음 속에 아빠의 존재가 어른이기보다 친구로 자리잡은 탓인 것 같았다. 엄마인 나에게는 감히 엄두도 못낼 행동을 아빠에게 해대기 시작했다. 아빠는 자기가 맞고 있으면서도 아이를 훈육하기는 커녕, 자기가 잘못해서 아이가 자기를 때렸다며 아이를 변호하기까지 했다.


우연히 내가 아빠가 맞는 장면을 보게 되면 엄하게 훈육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폭력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무엇보다 아빠 스스로가 이 문제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를 하고 대처하게 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 어떤 상황에서건 아이가 아빠를 때렸을 경우에는 정색을 하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고 절대 웃어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스스로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할 때까지 용서해주지 말라고 했다. 이 행동은 약 3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고쳐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기를 화나게 했을 경우에는 어른아이를 막론하고 때려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사고방식을 고쳐줘야 했으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폭력은 안되는 것이라고 단단히 가르쳤다. 


최근 아들에게 나타난 또 하나의 말썽은 바로 ‘무엇이든 반대로 얘기하는 버릇’이다. 가령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야 할 타이밍에 ‘안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한다든지,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해야할 때 ‘안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하는 식이다.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인데, 아무리 재미없다고 얘기해주어도 그 끝을 모르고 계속 반대말 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러다가 곧 제풀에 지쳐 그만둘 것이 분명하지만 6세 아이의 제멋대로 행동은 정말 5세까지는 몰랐던 신세계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6세를 버텨내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강구했다. 한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고개를 드는 식의 생활이 계속되니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잠들기 10분 전에 ‘속마음 이야기 하기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아이를 재우기 전 책을 10권 정도 읽어준 후 불을 끄고, ‘자 이제 우리 속마음 이야기하기 시간을 가지자’하고 분위기를 잡는다. 그러면 아이도 ‘또 무슨 재미있는 시간인가’ 싶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불을 끈 상태에서 이야기를 해 나가니까 아이도 속마음을 제대로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 유치원의 어떤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 유치원에서 하고 있는 공부 중에서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 없는지, 토요일마다 모여서 친구들과 하는 미술놀이는 왜 하기 싫은 지 등 아이의 속마음을 많이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속마음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엄마인 내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해주고, 아이가 잘못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올바로 고쳐주기도 하니 아이도 속마음 이야기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아이는 보통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최근에는 속마음 이야기하는 시간에 유치원 친구들이 자기를 놀렸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며 펑펑 울기까지 했다. 나는 사건의 진위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선생님께 해당 사건을 여쭤보았고, 아이의 시각에서 많이 각색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한시름 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 밖에도 또 한 가지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잠들기 전 아이에게 편지 한 장 써주기’이다. 아이가 이제 어느 정도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내가 손수 아이에게 손편지를 짧게 써주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글로 전해 받은 아이의 마음이 매우 뿌듯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에게 늘상 사주는 장난감보다 아이 마음에 더 큰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항상 인쇄된 글자체만 보다가 사람이 쓴 글씨를 읽어야 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새로운 경험인지라, 문자 해독력에도 도움을 주는 것 같았다. 


말로 하기 낯간지럽고 어색한 표현을 글로 적어 전하니, 아이에게 내 속마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서 내가 더 힐링받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입버릇이 되어버린 영혼 없는 ‘사랑한다’ 한마디 말보다, 엄마의 진심이 듬뿍 담긴 서너문장의 편지를 받은 아이의 행복감이 훨씬 더 커보였다. 내가 써준 손편지는 자신만의 보물상자에 고이고이 간직되고 있다.

눈에는 눈으로 세상을 대하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장님이 될 것이라고 했던 간디의 말처럼, 아이의 행동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서면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문제를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2차, 3차의 부작용을 낳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아이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를 야단치거나 혼을 낼 때 가장 주의해야할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널 사랑하지만 이 행동은 고쳐줬으면 좋겠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모든 부모는 늘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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