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제니 Jun 29. 2017

4년, 전업맘으로서 나를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

일과 육아,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난 4년 걸렸어.

내가 완전히 전업주부구나하고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보다 2년 먼저 결혼해서 큰 아이가 벌써 3학년인 내 친구가 2년 전 나에게 해준 말이다.

한창 전업맘, 워킹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던 나는 갑자기 모범답안과도 같은 해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요즘은 맞벌이가 워낙 대세이다 보니,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대다수의 가정에서 맞벌이를 한다. 우리 집 역시 그랬다. 2008년에 결혼해서 4년간을 아이 없는 맞벌이 형태로 살아오다가 2012년에 준이를 낳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나는 일을 포기하고 전업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찌 보면 '전업주부'의 삶을 먼저 살아본 것이 아니라 '전업맘'부터 시작한 셈이다.


전업주부로 먼저 좀 살아보다가 아이가 추가된 형태의 삶이었다면 조금 적응이 잘 되었을텐데, 나에게 있어 '전업맘'으로서의 삶은 정말 고되고 낯설었다. 엄마가 된 것도 가뜩이나 적응 안 되는데,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집안일만 하고 애만 보는 내 일상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나의 정체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오로지 집안에 갇혀, 좁은 공간을 왔다 갔다 하고, 별 부가가치도 느껴지지 않는 반복적인 일만 무한히 지속하는 '대화 없는 삶'. 그것이 내가 느꼈던 ‘전업맘의 삶’이었다.

도무지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가슴 속에서 응어리는 계속 자라났고, 말 안 통하는 답답한 아기와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하는 삶이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가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혹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란 질문이 머리 속을 맴돌기도 했다.


그래서 준이가 돌 될 무렵에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찾아서 2년 간 매달려보기도 하고 베이비시터도 고용해보고 내 나름대로 내 정신이 온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헤매기도 해보았다. 그러던 중 친구가 '적응 기간은 4년'이란 답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친구는 전업맘은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유학을 따라 미국에 9년간 체류하게 되면서 꼼짝없이 직업 없는 전업맘 체험을 한 셈이었다. 직업이 있는 친구임에도 '전업주부 생활'을 받아들이는 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물며 직업이 없는 나는 몇 년이나 걸릴 것인가. ‘나도 4년만 기다리면 좀 편안해질까?‘란 기대감과 ’그런데 혹시 더 길어지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나는 작년에 4개월 동안 워킹맘 체험을 해볼 기회가 있었다. 운이 좋게 동네에 있는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해서 파트타임으로 오후 4시까지 근무하는 일이었다. 짧지만 길었던 4개월여의 워킹맘 생활 동안 나는 솔직히 직장에 나가 일하면서 보람과 기쁨, 홀가분함(아이에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자아정체성의 충만함을 느꼈다. 하지만 체력이 쉽게 방전되고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워킹맘 체험을 해보니 워킹맘은 체력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대한 싸움을, 전업맘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 다 모두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삶이었다.


예전엔 남편은 밖에 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생산적인 일도 하며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는데 나 혼자만 집에 처박혀서 돈도 못 벌고 소모적인 집안일에만 매달려야만 한다는 사실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회가 불공평하게 느껴지고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머릿속으로는 전업주부, 전업맘의 역할이 중요하고 숭고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속으로는 와 닿지 않았다. 


짧았던 워킹맘의 생활이 정리되고 온전한 전업맘이 된 지금, 햇수로 세어보니 이제 나도 6년차, 만 4년 반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집에서 보낸 것 같다. 가끔 친구가 해준 4년이란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만큼 나에겐 간절한 인생의 해답이었던 것 같다. 만 4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전만큼 그렇게 전업맘 생활을 견디는 게 어렵지 않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나도 이제 '적응'이 된 걸까? 아니면 아이가 커서 손이 덜 가게 되어서 편해진 걸까? 


최근 체념인지 적응인지 알 수 없는 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전업맘 생활에 익숙해졌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솔직한 내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아이에게 쏟고 있는 현실이지만 내가 가진 여유 시간과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자유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만 4년 정도, 4년 반이 지나니 나도 전업주부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 것인가 보다. 아이가 좀 더 클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면서, 미래에 새로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다양한 직업에 대해 꿈꿔보고 준비해보면서 지금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채워나가는 것'으로 여기려고 한다.


4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얻게 된 '받아들임'


사실 아이가 6살이 되니 엄마로서 조금 바빠진 것도 사실이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집밖에서도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 엄마들의 모임도 참석해야 하고, 아이의 교육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습득활동 역시 중요해졌다. 아이가 어려서보다 컨디션 기복이 덜하게 되자 아이를 데리고 다양한 체험활동과 놀이 활동을 하러 다니기도 바빠졌다. 점점 '프로엄마'가 되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자주 하는 일은 아이가 푹 빠진 '비즈'의 도안을 만드는 일이다. 미술 쪽에 재주가 조금 있어서 엑셀을 이용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도안을 만들고 있다. 아이를 위해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기는 일 외에, 이렇게 내가 가진 재능들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생기니 육아에 보람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아이가 커나갈 수록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해주고,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눌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암흑 같았던 내 내면이 조금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오늘도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아이는 엄마의 정성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잘 키운 전업맘의 아이는 무엇이 다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