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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ul 03. 2017

전업맘, ’집에서 논다‘는 표현이 가장 힘든 이유

전업맘은 실업자가 아니야

나는 준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면서 처음 꼬박 5년 내내 '집에서 논다'라는 자괴감에 짓눌려 살았다. 집에서 꾸준히 부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논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마음속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반복되는 유산, 다시 준이를 임신하고 찾아온 유산기와 조산기..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던 나였지만, 다시 사회로 나가고 싶은 욕망은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직장사람들만 사용하는 용어들로 소통하고 싶고, 사회인들만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선과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우리들만의 문화를 나누며 깔깔대던 추억들이 너무나도 그리울 때도 있었고, 자신감에 차서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당연히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직장에 다니는 사회인은 우리 사회의 주류이지만, 난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느낌, 그들은 이 세상이 돌아가는 핵심에 근접해서 정보를 나누고, 가치를 공감하는 '주류'인데 난 세상 돌아가는 판도 모르고 유행도 뒤쳐지는 루저가 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드는 이유는 '집에서 논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전업주부가 노는 일은 아니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을 뿐, 실제로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엄마라는 ‘역할’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가정 내에서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엄마라는 자리가 가정이라는 물리적, 정신적 공간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따지고 이야기해도 책 한권은 족히 쓰고도 남을 만큼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논다'라는 표현 속에서의 '논다'는 play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있지 않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더 전업주부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단순히 일하고 있지 않다는 상태를 뜻하기만 하면 좋은데 '논다'라는 동사로 치환된 의미 안에 깔보는 속내가 들어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기분이 좋지 않다.                    

 

'논다'='일이 없다'='능력이 없다'='기여도가 없다'='무가치한 사람'


 이런 식으로 나 혼자 의미의 확장을 계속시키면서 집에서 논다는 표현에 더 부정적인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더 결정적이고 무서운 것은, '집에서 논다'는 표현을 나 스스로가 나에게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다. '나 집에서 놀잖아, 시간 많은 내가 하지 뭐' 이런 식으로 다른 바쁜 사람들의 일을 내가 챙겨야 할 때, 내 입에서 저절로 '나 집에서 논다'라는 표현이 자동 발사된다.


집에서 논다는 표현을 그렇게도 기분상해하면서, 집에서 논다는 표현을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확대해석하면서, 정작 그 표현을 내가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이는 전업주부로서의 삶이 얼마나 내 자존감을 떨어뜨려놓았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다.


차라리 남편이나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나에게 사용한 경우라면 '내가 집에서 놀기만 하냐!'고 반박이라도 할 텐데,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를 '나 집에서 논다'라고 표현할 때는 반박불가의 무장해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래 나 쓸모없는 인간이다. 무가치한 인간이니 남 뒤치다꺼리 일거리라도 해야 겨우 내 가치를 찾게 되는 거지'란 뜻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나 자신, 내가 나를 낮게 보기 때문에 더욱더 낮아지는 자존감... 


그래서 나는 돌잡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내 자존감을 되찾겠다며 개인사업도 벌여보기도 하고 파트타임도 해보면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적지 않은 시간인 2년간 나는 항상 목마름을 느끼며 '무언가'를 계속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도대체 '뭔지'조차 모르겠고, 뭘 찾는 것인지를 모르니까 찾아지지도 않았다. 처음엔 그것이 '내 자아인가?'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 자아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인 것 같기도 하고 '돈'인 것 같기도 하고 '성취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나 자신'인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뭘 잃어버린 것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았다.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을 찾기 위해 동네 엄마들 모임에 소속되어보기도 하고, 알바를 하면서 돈을 벌어보기도 하고, 사업을 일구면서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었는데 여전히 나는 '집에서 논다'라는 말 속에 갇혀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내 인생’이었다.


집에서 아무리 돈을 벌고 일을 해봤자,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집에서 노는 사람'이랑 아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준다. 집에서 하는 일도 상당히 바쁘고 많은데, '집'이라는 공간이 부리는 마법 때문인지, 집에만 있으면 '논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전업맘 스케줄표’를 만들고 시간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내 시간은 곧 내 삶과 인생을 뜻하는 것이었고, 시간 속에 내 자아도 있고, 정신도 있고, 돈도 있고, 보람도 있고, 성과도 있었다. 스케줄표를 만들어 규칙적으로 생활하다보니 집에서 노는 것이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시간을 쓸모 있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서서히 시간을 다스리며 자아를 찾아나가고 틈틈이 발전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구체화하며 살기 시작했다. 스케줄을 가지고 살다보니 인생에 자신감도 붙고, 나 자신이 바빠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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