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람은 집에서 산다. 집에서 살게 되면 집안일이 발생한다. 좋든 싫든 누군가는 반드시 집안일을 해야만 한다. 집안일을 아무도 하지 않고 가정이 유지되는 경우는 없다.
문제는 이 가사노동이 무보수인데다가 부가가치가 없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인 반면, 외주를 줄 경우 상당히 고비용이 지출되는 아이러니한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인류의 시작 이래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를 발판삼아 이어져 내려온 가사노동,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해결할 방법은 없는걸까?
우선 나는 집안일이 과연 쉬운 일인가하는 문제부터 생각해보았다. 요리를 제외하면 별도의 숙련기술 없이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낮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마저도 발달된 가전제품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위 요즘 세상에는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전제품의 도움을 받아 수월해진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 못살았던 시절에 비해 빨아야 할 옷가지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한번 입고 빨아버리는 청결해진 문화와, 조선시대에 비해 10배는 늘어난 살림살이와 집의 평수를 생각하면 과연 가전제품이 좀 돕는다고 해서 청소와 빨래가 쉬워졌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문명의 발달이 낮았던 시대에 비해, 잘살게 된 지금은 집이 커졌고, 욕실과 주방이 실내로 들어왔으며, 각 방별로 살림살이가 10배는 많아졌다. 단칸방에서 대여섯 식구가 함께 살며 단벌에 가까운 옷으로 한계절을 버티고, 옷장 하나와 책상 하나가 세간살이의 전부였던 시절과 지금의 청소, 빨래는 그 양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번입고 세탁기 속으로 직행하는 옷들과 수건, 일주일에 한번은 빨아야 하는 배게와 이불, 신발장을 가득 채운 신발 세탁을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 기계의 도움은 받는 측면이 있지만 관리의 업무량이 늘어난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즉, 과거에는 하나의 일이 오래 걸리고 힘들었던 반면, 요즘의 집안일의 프로세스는 쉬워졌지만 해야 할일이 너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집안일의 총량은 비슷하거나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가족 제도 하에서는 여러 사람이 분업해서 하던 일을 지금은 한두사람이 몰아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들의 경우 거의 요리 영역을 전담하고 있는 실정이라,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도 없는 요리의 영역을 도맡아 하고 있다면 실제로 가사노동의 강도에 있어 문명의 혜택을 크게 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혹자는 반조리 식품의 예를 들며 요리가 편해졌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삼시세끼를 반조리 식품에 의존하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리를 제대로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스렌지와 전자렌지의 도움을 받더라도,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고, 가열하고, 맛을 내는 기본 과정의 흐름없이 요리를 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간살이가 많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여러개의 방과 넓어진 평수, 욕실과 주방의 관리, 많아진 살림살이를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단순히 먼지를 쓸어내는 '청소'보다는 '정리정돈'의 능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많아진 물건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보기좋게 정리해야 하는 업무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여성들이 고통받는 가사노동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청소'하면 청소기돌리기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뭍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의 경우 청소에 보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집이 더러워 보이는 이유는 먼지가 많아서이기보다 어질러져 있어서라고 보는 편이 맞을 정도로 정리정돈 업무는 오래걸리도 노동강도가 높다. 가사도우미의 페이가 높은 이유가 바로 이 정리정돈 업무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현대 사회에서 '집안일'이라고 분류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쓰레기 버리기인데, 매일매일 다양한 소비를 하며 생활하다보니 소비의 부산물인 쓰레기가 발생하는 양 또한 많아졌다. 이것이 집안일로 여겨질 정도로 하루에 배출해내는 가정의 쓰레기양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대략적으로 6개 정도로 분류해본 집안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명의 혜택을 받아 쉬워진 반면 늘어난 가짓수와 달라진 생활패턴 덕분에 집안일의 총량이 결코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코 집에서 쉬면서, 놀면서 할 수 있는 종류의 일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집안일들이 여성의 자존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데에 있다.
집안일이 여성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이유
1. 마이너스섬 기준
가사노동의 특성상, 이 것을 하면 뭔가 더 좋아져서 한다기 보다, 하지 않으면 더 나빠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측면이 많은데, 특히 여성과 남성의 젠더 기준이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더 자존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령, 남성의 경우 집안일을 안한다 하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는 노말 포지션인데, 조금이라도 도와줄 경우 좋은 남편으로서 가치가 올라가는 반면, 여성의 경우 '원래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것이 기본인데, 분담을 할 경우 많은 도움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여성의 경우 집안일을 전담하고 잘해봤자 겨우 본전에 도달하며, 집안일을 덜 맡아 하면 '주부답지 못한 여성'으로 인식되고, 남성의 경우 집안일을 하나둘 추가할 때마다 좋은 남성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는 인식구조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마저도 남성은 쉽고 간편한 집안일을 전담하게 되고 여성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노동을 담당하면서도 '분담해줬으니 감사한', 또는 '편해진' 입장이 되어야 한다. 육아의 경우 아이를 먹이고 돌보는 기본적인 노동을 여자가 전담하고, 남성의 경우 아이와 놀아주기만 해도 아빠 역할을 잘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마저 있다.
여성은 마이너스인 포지션을 제로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가사노동을 하게 되니 힘겹고 불공평하고 부당함을 느끼게 되고, 남성의 경우 제로포인트부터 시작하여 플러스 포지션을 위한 집안일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한다고 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단지 귀찮을 뿐이다.
2. 불공평한 분담
한편, 위에 언급했듯이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표면적인 가사분담을 하더라도, 가사노동의 강도 및 시간을 따져보았을 때 여성이 더 많은 부담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요리를 전담하거나, 육아에 더 많은 포지션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불공평한 분담의 근거로 '여성성'을 들먹이거나, 남녀 수입의 기여도 차이, 외부 노동시간과 강도의 차이를 드는 사람들이 많다. 어떠한 근거를 들더라도, 가사노동의 참여가 남자에게는 플러스 포지션을, 여성에게는 제로섬 포지션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성의 양보와 희생을 '공평'이란 가치로 계산하려고 해보았자, 공평해질 수 없을 뿐더러, 이를테면 월급 10만원 당 가사노동 몇시간 참여가 공평하다는 계산식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 가사분담을 해줄 경우 여성은 '고마움'을 느끼는 반면, 부인이 가사일을 하는 모습은 '자기 할일을 하는 당연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남자들은 가사일을 하는 부인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세세한 심리적인 부분까지 남성과 여성의 입장이 차이나기 때문에 여성의 집안일은 자존감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열심해 해도, 잘해도 본전이기 때문이다.
3. 가치 후려치기
잘해도 본전인 집안일에 있어서, 가치 후려치기까지 당한다면 여성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뭐 한게 있냐, 집안일 중 잘하는게 뭐냐, 겨우 이 정도 일하는 거 가지고 힘들다는 소리를 하냐, 요리가 맛없다, 예전 여자들에 비해 편하다는 등의 발언을 듣는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란 자아비판적 우울감까지 가질 수 있게 된다. 해도해도 끝이 없고, 티가 안나는 집안일, 열심히 해도 잘한다는 기준에 도달하기 어려우며, 집안일을 아주 잘하는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그것을 '기본적인 상태'로 보려는 경향마저 있어서 집안일을 대함에 있어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현대 집안일에 대한 새로운 가치체계 부여와 보상이 뒤따라야 하며, 깨끗한 집에서 맛있는 집밥을 먹으며,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는 것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생활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 모두 집안일을 안할수도, 못할 수도 있는 존재로서 기본 포지션을 가져야하며, 집안일 한가지씩을 나누어 담당할 때마다 플러스 포지션을 가질 수 있도록 인식전환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남편이 집안일 몇개를 도우면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한 것이 되고, 부인이 집안일을 잘 못하면 굉장히 흉이되는 인식을 근본부터 바꾸어 나가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