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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an 13. 2019

워킹맘, 할머니 육아와의 밸런스 (3)

오늘은 3-7세 아이들의 발달과업인 '주도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7세 취학전 아이들은 '주도성'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주도성과 자율성은 얼핏 비슷해보이는 개념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자율성은 '뭐든지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데 그친다면 주도성은 '내가 대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자율성은 혼자 있어도 길러지지만 주도성은 반드시 나 이외의 타인이 1명 이상 필요합니다. 

때문에 0-3세 아이들은 자율성 연습 때문에 아무거나 손대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해서 '안돼'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안돼'라는 말을 하지 말아라라는 육아 조언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주도성의 예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보면 아이들이 엄마에게 명령질, 선생질을 하거나 역할놀이를 시작하거나 소꿉놀이 등의 놀이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준이는 4세가 되고부터 엄마아빠에게 '무슨무슨 놀이'를 하자고 먼저 제안하기 시작했으며, 항상 자기가 가장 좋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상황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역할을 결정하고 분배하며, 실제 놀이를 진행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해보면서 자신의 주도성에 흠뻑 취하게 됩니다. 

저는 4살부터 바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저와 놀아주는 분이 아니었기도 했고, 동생도 태어났던 터라, 집에서는 너무나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아침먹고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루종일 밖에 있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과거 제가 어렸을 때에는 동네에 나가기만 하면 아이들이 넘쳐났습니다. 당연히 또래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고 놀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소꿉놀이가 대표적인 주도성 놀이였습니다. 누가 엄마하고 누가 아빠하고 누가 아기를 할 것인지 역할을 정하는 단계부터 이미 아이들의 주도성 겨루기가 시작됩니다. 

조금 놀이를 진행하다보면 아이들끼리 이 상황에선 니가 이렇게 해야 된다, 아니다 저렇게 해야 된다며 의견충돌이 일어납니다. 서로 각자의 집에서 보고 자랐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다 달랐으니까요. 아기 역할을 한 아이는 항상 불만이 많습니다. 엄마, 아빠의 주도적인 모습을 흉내내볼 수 있는 기회를 놀이 상황 속에서나마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옛날 아이들은 동네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도성을 길렀던 반면, 요즘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주도성을 기릅니다. 요즘 아이들은 하루종일 엄마나 할머니와 붙어 있거나, 어린이집에서 단체생활을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주도성을 기를만한 상황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대다수가 모여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하거나, 정해진 순서에 맞춰 체험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워킹맘의 아이가 주도성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는 양육자와 함께 있는 시간 밖에 없습니다. (동네문화가 사라지긴 했지만 전업맘의 아이들은 원생활이 끝난 후에 동네 엄마들이 주도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또래문화를 체험해 볼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기관에 가지 않고 가정보육을 하는 아이의 경우, 주도성 기르기는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길러질 수 밖에 없는데, 할머니분들 대다수는 아이와 '놀아주는' 육아를 해본 경험이 전무한 세대의 분들입니다. 할머니분들의 자녀, 즉 우리세대는 동네에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를 하고 자란 세대입니다. 동네에서 놀지 않았더라도 형제가 최소 둘 이상이라 아이들끼리 치고박고 자라면 자랐지, 부모와 뭔가를 하고 놀았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할머니들은 아기들은 정말 잘 돌보시지만 좀 큰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는 많이 서툽니다. 아기들은 딸랑이 가지고 놀아주고, 이것저것 보여주며 말걸어주는 게 놀이의 전부지만 '역할놀이', 상황설정을 통한 '가상놀이'가 시작되는 4-7세가 되면 할머니 육아의 특징인 'TV 보여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여자'인 할머니가 '남자'인 손자들과 놀아주는 데에는 체력과 정신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아이가 4-7세가 되연 자연스럽게 또래집단으로 스며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의 주도성은 혼자 앉아서 블록놀이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내 명령에 따르게 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엄마들은 정신연령이 서로 안맞는 아이들과 역할놀이를 해도 별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암젼히 앉아서 같이 그림을 그리거나, 레고를 만드는 정적인 놀이를 더 선호하는 반면 아빠들은 정신연령이 3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아이들과도 '비슷한 수준'으로 잘 놉니다. 때문에 퇴근 후 아빠와 함께 하는 몸놀이, 부모가 져주는 다양한 형태의 게임들이 아이들의 주도성 발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즉, 할머니와 아이들 사이에서는 '놀이'가 거의 잘 이루어지지 않고,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서는 엄마 주도의 정적인 놀이 위주가 되기 쉬우며(아이들 입장에서는 미술수업이나 다름없는), 아빠와 아이들 사이에서는 또래 놀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가 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4-7세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영향력이 매우 커집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교육모드로 진입하기 때문에 다시 엄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 되지만 취학전 3년 간은 아빠가 인생 최대치의 육아투자를 해놓아야 아이, 아빠 자신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저도 아주 잠깐이지만 어린 시절 아빠가 목마를 태워주고, 말을 태워주며 놀았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엄마나 할머니는 절대 해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빠와 놀이 속에서 아이는 터닝메카드, 아빠는 괴물이 되어 아빠를 마음껏 무찔러볼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딸들의 경우 엄마가 주말을 이용하여 유치원 친구들이나 어린이집 친구들을 외부에서 만나게 해주는 지원활동이 매우 도움됩니다. 여자애들에게 있어서 인형놀이나 소꿉놀이를 대체할만한 주도성 놀이는 흔치 않으니까요. (다 큰 엄마들에겐 노잼인 소꿉놀이 ㅠㅠ)

동네문화의 소멸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옛날 방식 놀이문화는 대장이 되는 아이는 주도성과 리더쉽을 잘 기를 수 있지만, 관계를 주도할 힘이 적은 아이들은 주도성을 기를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관계를 주도하는 힘은 아이의 몸집 크기나 나이가 크게 한몫했고, 그 외에 아이들의 개별적인 성격 정도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의 주도성을 길러주는 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나아진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7세 주도성 기르기
- 퇴근 후 아이와 역할놀이를 통해 다양하게 놀아주세요. 아빠와의 놀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 주말을 이용하여 아이들의 동네 친구와 만나서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세요.
- 할머니께 아이와 역할놀이를 해달라고 부탁드리기보다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드려보세요.
- 자유놀이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병설유치원이나, 자유놀이 시간을 많이 주는 놀이 중심의 유치원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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