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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제니 Jan 13. 2019

워킹맘, 할머니 육아와의 밸런스 (4)

오늘은 할머니 육아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키워주셨던 저는 특별할 것도 없이 무한히 반복되는 '집에서 혼자 놀기->밥먹기'란 일상을 너무 지루하게 여겼습니다. 간만에 놀이터라도 한번 나갈라치면 놀이공원에 가는 수준만큼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연로하신 할머니는 놀이터에 한번 같이 나가주시는 것도 힘들어 하셨습니다. 게다가 잠이 줄어들어 낮 동안 체력이 약해진 할머니는 낮잠으로 부족한 밤잠을 보충하시곤 했습니다.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면 저는 할머니가 깨지 않게 조용히 혼자 놀거나,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할머니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과거의 할머니 육아는 할머니의 집에서, 할머니의 동네에서 대문 열어놓고 이루어진 반면 최근의 할머니 육아는 우리 집에서, 우리 동네에서 할머니가 몸만 오셔서 아이를 돌봐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동네 사람들이 집에 들락거리며 아이들과 돌아가면서 놀아주기도 했고, 할머니도 이집저집 손주를 업고 다니면서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집에서 육아가 이루어졌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할머니의 집에 부부가 합가하여 모시고 살았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제 경우는 과거의 일반적인 할머니 육아와는 달리 할머니가 저희집에 오셔서 같이 사시면서 저를 키워주신 케이스입니다. 할머니의 집이 아닌, 저희 집이었고, 할머니의 익숙한 동네가 아닌 낯선 동네였습니다. 때문에 할머니는 당연하게 집에만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너무나도 하루종일 집에만 계셨고, '놀아주지 않는' 할머니와 하루종일 같이 있는 것은 어린 저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4살부터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당시에는 엄마가 키웠더라도 다들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체험해봤던 것들이 유별나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아이들은 체험해볼 수 있는 유년기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어졌습니다. 책육아, 엄마표 영어, 가베, 문화센터, 짐보리, 촉감, 오감놀이, 종이접기, 클레이, 주말마다 여행, 과학관, 어린이 도서관, 어린이 박물관, 농장체험, 워터파크 등 대충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았는데도 열가지가 넘네요. 

생후 6개월 정도의 아기들부터 뭔가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세상이 열립니다. 할머니 육아, 시터 육아에서는 저 중에서 몇 가지나 가능할까요? 일부 몇가지들은 워킹맘들도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체험시켜줄 수 있는 것들이긴 합니다만 주말요금과 주말인파를 감당해야 하는 버거움이 뒤따릅니다. 

문센, 종이접기, 클레이, 가베.. 이런 것들이 유년기에 꼭 필요한 활동인가요? 아닙니다. 그런걸 한다고 해서 아이가 총명해지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뒤쳐지는 것도 아니고, 그걸 안해봤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활동들은 아이가 지루하거나 심심해하지 않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 언급해드린 것입니다. 

주위 워킹맘들 중에서는 아이가 할머니랑 둘이 있는 것을 너무 심심해해서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할머니 계신데 굳이 왜 어린이집까지 보내냐며 그런 워킹맘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100% 이해합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그런 심정이었으니까요. '일단 집 밖을 나가야 한다'는 제 유년시절 생활의 모토였습니다. 

가끔 문센에 할머니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 학기 이상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할머니가 혼자 애를 데리고 운전해서 어딘가를 외출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문센에 못가는 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엄마가 키우는 경우에는 애 컨디션이 나쁘면 또는 낮잠시간과 잘못 겹치면 그까짓 문센 한번 빠지면 그만이다 하고 끝나지만, 엄마를 대신해서 문센에 데려가야 하는 미션을 가진 할머니에게는 문센에 못가는 상황에 대해서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할머니 입장에서 뭔가 죄책감이 들고, 멀리 있는 아이 엄마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해야 안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얘기하는 과정 자체가 어렵기도 합니다. 

또 딸이, 며느리가 이미 돈을 다 내놓았는데 내가 피곤하다고 해서 하루 빠지겠다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내 돈을 낸 경우라면 피곤할 때 빠지는 것도 내 마음인 것과는 매우 다른 입장입니다. 문센에 와서도 다른 엄마들에 비해 내가 과연 잘 해주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 보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할머니들도 아이들을 관찰하고 필요한 것을 넣어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손주들이니까요. 하지만 '퇴근 후 지 에미가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겠지, 오죽 잘 알아보고 잘 해주겠어?'란 안심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할머니는 주양육자이면서도 육아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부양육자이기도 한 존재입니다.


다채롭지 못한 할머니 육아로 인해 일상의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들
원인 : 집에만 하루종일 있는 할머니 육아의 특성
-> 할머니가 봐주시더라도 육아 요소에 변화를 주기 위해 어린이집에 잠시 맡기는 것이 도움됩니다.
-> 힘드시겠지만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자주 해주시는 것이 도움됩니다.
-> 퇴근 후 힘들겠지만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다양한 활동을 접하게 해주세요. 엄마와의 기억이 긍정적으로 쌓여갈 것입니다.
-> 할머니가 아이를 봐주시는 수고비로 드리는 용돈 외에 아이 양육에 필요한 경비, 재료비를 별도로 드리세요. 아이를 데리고 문방구라도 나가셔서 뭔가를 사오시고 아이와 함께 놀아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럼 평범한 엄마가 키우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시간을 보낼까요?

엄마와 같이 있는 아이들은 엄마와 마트에도 가고, 늘어지게 집에서 백수오빠 흉내도 내보고, 동네 다른 아가네 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놀이터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보고, 엄마 의지 불타는 날에는 종이접기나 클레이 놀이도 체험해볼 수 있고, 콩도 한보따리 사와서 악기도 만들어주고, 문센도 다니고, 유모차 타고 산보도 나가고, 운 좋으면 프뢰벨이나 아가월드 수업 하나 정도도 시작해보고, 아이가 재미없어 한다 싶으면 중단하는 등 적당히 다양하고, 적당히 지루하지 않고, 적당히 힘들지 않게 지냅니다. 

무엇보다 엄마가 항상 아이를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지루해한다 싶으면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 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합니다. 그것들이 돈이 들어가는 활동이라도 엄마 선에서 결정해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 아이한테 뭔가 많이 해줬다 싶으면 잠시 아무것도 안해주고 혼자 놀게 놔두기도 하고요. 열성적인 엄마들은 교육적인 부분까지 커버하려고 합니다. 

엄마라는 소우주 안에서 아이는 자신에게 맞춰진 양육 밸런스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지요. 집에 있는 엄마들이 박사급, 유치원 선생님급으로 아이들에게 대단한 것을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컨디션과 상태, 흥미에 따라 맞춤형 환경을 그때그때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아이에게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 특별한 선물이나 특별한 여행, 특별한 놀이시설을 선물함으로써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려는 시도보다 다른 전업 엄마들이 평범하게 아이들에게 해주는 일상적인 것들을 아이와 함께 나눠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요즘은 주말도 길어서 과거 주 6일 근무시절보다는 훨씬 아이들이 엄마를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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