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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1년에 365개 계획 세우기

by 그레이칼라
아들아,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이 반지하 방에서 아들에게 했던 명대사이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그러면 실패에 대한 걱정도 결과를 두려워할 일도 없다고 했던 기택은 왜 아들에게 저런 얘기를 했던 것일까?


"저는 이게 어떻게 해석이 되냐면, 관객들로 하여금 기택네 가족의 반지하 방으로 너무 빨리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바로) 몰입하기보다는 좀 관망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만화적인 대사가 나온 거죠. 봉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설정이었다고 봐요. 관망하다 보면,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우리의 모습과 (기택이) 흡사하다는 거예요. 기택이 야심이 번뜩인다든지 그래 버리면, 이 드라마 얘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그걸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겠더라고요. 오히려 정말 연체동물처럼 가다가 클라이맥스에서 그런 모습으로 나왔을 때,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신선한 충격과 입체감이 있고 격차와 낙폭이 크게 와 닿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송강호 배우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얘기했던 내용이다.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너무 빨리 들어오지 마시고, 이야기의 맥락을 살피기 위한 관망을 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던 대목이라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 배우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에 신선한 충격과 입체감 있는 낙폭을 선사해주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동안 무수히 많은 계획들을 세워왔다. 심하게 말하면 계획 때문에 가끔은 노예 같은 삶을 반복한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일단 계획이 세워지면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마치 목표 달성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통과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행위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만약 계획이라는 수단이 나를 억압하는 장치로 느껴진다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올 때까지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민첩하게 방향을 틀고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목적이 없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싫어도 이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 실패를 통해서 근거를 몸에 남겨야 한다. 목적이 없는 계획은 애초에 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이런 수련의 과정을 자신만의 자산으로 남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이 추구하는 목표나 목적을 위해 관성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리곤 기계처럼 성실히 반복하며 열심히 계획을 수정하고 아등바등거리며 일을 한다. 하지만 본인에게 남게 되는 것은 벗어나고 싶은 피로감일 경우가 더 많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끝나서 리셋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는 해마다 회사에서 '가치 없는' 계획 세우기를 강요받는다.


목표 세팅이라는 작업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누락된 채로 Top-Down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정답을 위한 스토리텔링에 나의 에너지를 갈아 넣는 작업이다. 스토리라인이 만들어지면 회사원들은 본인만의 충성스러운 부품 역할이 빛이 날 수 있는 타이밍을 찾아 헤맨다.


왜 이유 없이 이 짓을 반복해야 하나?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현실을 알고 하는 얘기인가?

그냥 넘어가자.


이런 생각들을 한 번씩은 해봤을 것이다. 목적이 없는 계획 세우기 작업이 괴로움을 넘어 이제는 포기의 단계에 와있는 경우도 많다. 목적이 희미한 상태에서 계획을 세우고 나면 나에게 자산이 될 수 있는 보상(동기부여)의 지점과 노력의 크기를 측정할 수가 없다. 무수히 많은 회사의 표어와 캐치프레이즈가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유이다.


'Move fast break things'

'초고속으로 움직여 박살을 내버려라. 깨부수어버려라. 그리고 기존 질서를 갈아엎자.'


Facebook에서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에 해당하는 말이다.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조직 구성원의 존재 이유가 되고, 일을 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Facebook의 '회사원'들은 모두가 추구하고 공유하고 있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저마다의 계획을 세운다. 팀 단위의 계획도 세운다. 우리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한다. 그런데 효과는? 그리고 성과는? 평가에 대한 공정함은?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폭발시킨다. 그 결과에 성찰하는 모습도 성숙해져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추구하는 가치의 잣대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 번쯤 들어봤을 '지구 상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들의 속 사정이다. 이들 기업이 구성원을 채용하는 기준 또한, 조직의 가치를 얼마나 공감하고 있고 실행에 옮길 수가 있느냐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곧 내가 일하고 싶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위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자, 계획의 의미가 좀 달라졌는가? 여전히 정해진 답을 위한 스토리라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자신이 인정하고 추구하는 목적이 정해지고 나면, 우리의 정신은 그것을 달성할 방법을 찾고자 몰입의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계획 작업이 즐겁다면, 실행력도 자연스레 올라가고 결과에 대한 성찰의 수준도 올라간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지구 상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기업들과 조직들은 이미 선순환 구조를 장착해놓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조직문화는, 계획을 하지 않고도 누구나 밥 굶지 않고 살 수 있었고 계획을 하고 살면 더 큰돈을 벌었던 시절에 생겨 났다. 그러나 이제는 계획이 없으면 Move fast 할 수 없고, break things의 대상이 될 처지가 되었다. 내가 계획을 세우면 마음이 놓이고 마치 목표 달성을 위한 첫 번째 단계가 통과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조직문화는 아직 관성적인 안락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을 원망하면서 덜 상처 받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게 바로 계획 없는 삶이다. 그러나 조직이 살아남으려면 계획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습적이고 관성적인 형태로는 경쟁력도 사라질뿐더러 구성원들도 함께 도태되어 간다.


요즘 직장인들이 '우리 회사가 달라졌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문화가 조직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하지만 내가 속한 조직에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떤 시도를 해야 할까?


지금 당장 전체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우선 내가 속한 조직 내부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목적을 만들자.


예를 들면, '우리 팀 모두의 자존감을 지키자', '나의 가장 소중한 고객은 팀원이다'와 같은 작지만 소중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는 것은 그다음의 순서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성과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면, 일을 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요소는 자연스레 그 속에 녹아들 수 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계획 세우기 작업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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