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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칼라 Aug 26. 2020

오뚝이

마음속의 오뚝이를 넘어뜨리자

할머니와 오뚝이


오뚝이는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돼지띠 큰 손자가 이뻐서 귀여운(?) 아기 돼지 형상을 한 오뚝이를 시장에서 사 오셨던 것이었죠. 

"오뚝이 한번 굴려봐라. 오뚝이가 계속 누워있으면 할머니가 용돈 줄게."

오뚝이가 뭔지 몰랐던 저는 오뚝이를 눕혔다가 다시 세웠다가를 반복하면서 이상한 이 물건이 가만히 누워있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오뚝이 밑바닥에 묵직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 물건이 왜 좌우로 움직이다가도 중심을 잡고 다시 서게 되는지 알게 되었죠. 어린 저에게는 참 신기했던 장난감이었습니다.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할머니는 제가 5학년이었던 여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장례가 진행되는 3일 동안 오뚝이를 몇 번이고 굴리고 세우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일어나지 않으시더라고요.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죽고 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오뚝이


1990년대 말, 우리 집에도 IMF의 여파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술도 드시지 않고, 아주 엄했던 아버지가 저랑 동생의 용돈을 저금했던 돈을 쓰셔야 한다며 울먹거리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이후로 처음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식사도 제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가정 형편은 아주 어렵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오뚝이처럼 다시 좌우로 몸부림을 치며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된 지금에서야, 그 당시 아버지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하는 생각에 존경스럽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도 많이 듭니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몸으로 겪고 나니, 사람이 죽지만(포기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오뚝이

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이 되던 첫 학기에 전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공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덕분에 남들이 수료해야 할 학점의 곱절을 이수하고서야 졸업을 할 수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전공에 미치지 말고, 세상을 좀 더 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이 많은 복학생이 새로운 전공을 듣는데, 그것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루하루가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어려움으로 흔들릴 때마다 마음속의 오뚝이를 다시 세우며 버텨내었습니다. 그 덕분에 2년 만에 동기들과 같은 시기에 졸업했고, 당시에 원하던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인생을 돌아보면, 여전히 아쉬움과 후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마음속에서 오뚝이가 넘어졌다 일어났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배웠던 교훈 또한 남아있습니다. 바로 '오뚝이가 넘어질 때가 있으면 다시 일어나는 때도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러나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와 배움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오뚝이를 넘어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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