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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Sep 14. 2015

추석에 만나는 두 번째 가족

결혼은 나에게 두 번째 가족을 주었다.

하나도 벅찬데 둘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거기에 새로 생긴 가족은 나에게 노예근성을 원했다.

주인님이라 명칭만 부르지 않았을 뿐 집안 식구들을 알아서 모셔야 했고, 불리지만 않았지 그 집안의 대소사를 비롯해 구석구석의 일까지 도맡아 처리해야만 하는 그야말로 하인역할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두 번째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추석 하루 전날 아침에 나는 짐을 싼다.

추석날 입을 옷과 아이옷, 남편옷, 세면도구 정도..그리고 두 번째 가족에게 드릴 돈.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차로 15분정도 거리에 있는 큰형님 집으로 간다.

나의 명절은 입으로 시작해서 입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새 식구들의 적막을 깨는 일은 내가 담당해왔다.

"형님, 식사 하셨어요?"

"동서, 도련님은 오늘 출근 안했나?"

"어머님은 언제오신대요?"

"뭐부터 할까요?"

그동안 보지 못해 알지 못했던 것들을 물어보면서 내 입의 노동은 전 부치는 일과 함께 시작된다.

며느리가 셋이어서 그런지 대체로 업무분담이 잘 되어있다.

"동서, 나 썰기가 서툰데 ~ 동서가 썰어주면 안 돼?"

"형님, 그건 형님이 하셨던 일인데요~ 잘 하문서!"

"그려!"

그렇게 일은 시작된다.

형님은 가스레인지 근처에서 삶고 무치고 끓이는 일을 도맡아서 하신다.

동서는 내 앞에서 내 말들에 일일이 답해주며 대부분의 칼질과 부침개 준비를 맡고 있다.

난! 부침개를 부치고 몇 가지 동서 일을 도와준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보통 오후 5시정도에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1시간 후. 6시부터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다.

여자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우린 신속하게 움직인다.


그럴 때 시댁 남자들은 TV를 보거나, 자거나, 그것도 지루해서 하기 싫으면 당구를 치러간다.

그리고 저녁식사시간이 되어야 들어와서 상도 피지 않은 채 그렇게 또 TV를 본다.

우리는 그들의 노예마냥 그들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들고 숟가락 젓가락까지 그 앞에 놓아준다.

그런 후에야 그들은 식사를 시작한다.

물도 갖다 주어야 먹을 정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시댁 여자들은 식사 중간 중간에도 남자들의 상을 살피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고 갖다 주는 배려를 한다.

참! 시댁은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남자상과 여자상을 따로 준비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볼때마다 속상하고 짜증난다. 정말 노예 같다는 느낌이 드는 예 중의 하나다.

그리곤 커피타임.

형님은 커피를 좋아한다. 동서도 좋아한다.

그런 커피를 뭐가 그리 바쁘다고 물마시듯 마셔버린다.

음식을 정리하고 상을 닦고 그릇들을 나르며 설거지를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후식으로 먹을 과일을 깎는다. 그러면 남성 동지들은 우아하게 또 TV를 시청하며 커피와 깎아놓은 과일을 먹는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여유가 묻어있다.


일이 끝났다!

"형님 이젠 좀 쉬세요!"

"동서 그만 닦아~"

"장보리 한다! 빨랑 와~"

쉬려고 식탁의자에 내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남성 동지들은 술상을 보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만 화를 이기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원래 여성동지들은 남성 동지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안 되는데 난 외모만큼이나 여성동지가 아닌가보다. 아니고 싶다!

"술은 좀 갖다 드시죠?

그것도 안하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순간 가족들이 얼어버렸다.

아니, 놀이의 얼음이다.

아버님은 불편한 헛기침을 하고 신랑은 무신경한 듯 딴 곳을 응시하고, 도련님은 불편한 얼굴이 드러낸 가운데 아주버님이 일어선다.

그리고 형님을 부른다.

"오징어 어디에 뒀어?"

헉! 찾아보지도 않고 말부터 시작한다. 동서가 일어선다. 착한 동서.

난 움직이지 않고 TV를 본다.

남보다 못한 사이들 같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잘하면서 정작 함께 사는 이에게는 그들의 편함을 위해 무배려를 선택했다.

나에게 두 번째 생긴 가족은 이랬다.

결국 남성 동지들은 술을 찾아 간단히 술을 먹은 후에 치우지도 않고 들어가 자버린다.

치우는 몫은 결국 또 여성동지들의 몫.


나에게 명절은 그런 것이었다.

배려 없는 가족을 알게 해주는 그런 만남.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황씨 집안 남자들은 그렇게 함께 사는 사람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나의 불만과 불편함과 그들의 무정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황씨 집안 남자들뿐이었겠는가?

학원에 나가서 얘기를 듣다보면 곳곳에 황씨 집안 남자들이 그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때론 더한 남자들도 있었다.

예전의 추석의 의미는 이것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여자들은 명절이면 어김없이 노예가 된다.

남자들이 만들어낸 문화인거다.


다음날 아침. 형님이 먼저 일어나신다.

시간은 7시.

그리고 나, 동서, 어머니.

남자들은 9시까지 잔다.

여성동지들은 9시까지 지지고 볶고 하면서 제사상을 차린다.

드디어 명절의 하이라이트! 남자들이 하는 일이 있다.

제사상에 술 따르고 숟가락 꽂는 것.

그걸로 끝!

조상님께 여자들은 절도 올리지 못한다.

뒤에서 지켜만 볼뿐!

이것도 왜 그런지 문화라 전통이라 말하지만 도대체 설득이 되지 않는 문화고 전통이다.

상은 여자들이 차리고 생색과 복은 남자들의 몫처럼 만드는 이런 문화가 조상을 모시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21세기 현재에도 여자는 여전히 하찮고 부정 타는 존재인지 묻고 싶다.

암튼 또 밥상을 차리고 커피를 물마시듯 마시고 설거지를 하고 과일을 깎고 나면 그때서야 우리의 명절은 끝이 난다.


이곳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추석이라는 명절에 난 무엇을 느껴야하는 걸까?

‘노예’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즐겁게 가족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나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살아왔던 우리네 어머니들이다.

그들은 우리가 두 번째 가족 안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고 죄책감을 준다. 때론 처벌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 노예가 아니고 뭐겠는가?


요즘 가족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족공동체' 좋은 말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함께 먹을 것을 함께 준비하고 만들고 함께 얘기하며 함께 마무리 짓는 가족! 그래서 서로 더 공감할 있고 그것이 소통의 문임을 아는 성숙한 가족!

나는 그런 공동체 안에서 가족을 느끼고 명절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조상들에게도 감사하며 그 소중한 날을 기다릴 것 같다.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내 입은 화를 못 참고 부루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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