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 무안까지 가는 것이 나의 첫 시험이었다.
길도 어둡고 집에서 4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가는 시간만 2시간 약간 못되었다.
작년에 갈 때 안개가 있어 운전이 위험했기 때문에 난 첫 여행 시작부터 잔뜩 긴장을 해야 했다.
무사히 잘 도착해 비행기를 탔다. 세상이 작아 보였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닥 내가 사는 세상이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런 세상이 뭐라고 욕심 부리고 화내고 전전긍긍해하며 나 자신을 나약하게 했는지 헛웃음만 나왔다.
이번 여행의 주제를 잡았다.
'덜 말하고 많이 찍고 많이 걷기'
그리고
저번 글쓰기 내용 중에서 '덜 두려워하고 많이 사랑하자' 중에서 '덜 두려워하기'.
사랑은 아직 나에겐 숙제로 남아있다. 나이가 들수록 상처받는 횟수가 조금씩 늘어갈수록 나의 사랑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사랑이 넘쳐 주체할 수 없는 상원이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재현이는 어디로 가고 없는지 지나간 시간만큼 차가워져 가는 내 눈이 느껴진다.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몸 중에서 마음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것은 눈이다. 그 느낌이 있다. 암튼 사랑은 어려운 걸로 정하고 그나마 좀 쉬운 것으로 택한 것이 '덜 두려워하기'이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계획대로 난 '거문오름'으로 향했다.
그곳은 지금 ‘2015년 세계 거문오름 트레킹’행사 기간으로, 1년에 한번 개방한다는 용암길도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총 트레킹 시간은 3시간 30분.
내 관절이 잠깐 걱정되었지만 4시간 한계선을 넘지 않았기에 거문오름 안내소로 향했다.
작년에 꼭 가보고 싶어 예약까지 했다가 시간이 안되어서 취소한 곳이었다.
세계유산지역인 그곳을 걸으며 길 사진을 찍고 싶었다.
오염되지 않고 자연과 사람에 대한 배려로 만들어진 거문오름 길을 걸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홀로 길을 걸으니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찍고 싶을 때 찍고 선택의 순간이 올 땐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 여유 있고 좋았다.
처음엔 분화구 길만 걸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1년에 한번 개방한다는 용암길을, 그것도 내가 그때에 가서 걷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뭔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그 길은 두려웠다.
뱀도 사람도 두려운 길이었다.
1년에 한번 개방하는 곳이라 그런지 분화구 길과는 다르게 정글 자체였다.
약간 보이는 길과 안내줄만 있을 뿐.
두려움에 발걸음은 빨라지고 앞 일행이 보이기 전까지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곧 주위에 사람들 소리가 나면서 난 사진기를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자연 그대로인 그곳을 어떤 관점으로 어떤 모습으로 찍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세계적 유산인 그곳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어렵기만 했다.
생명의 숲 ‘곶자왈’
크고 작은 바위틈에 이끼며, 식물들이 뒤엉켜 숲을 이루는 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그곳을 보고 찍기에 나의 기술이, 앎이 짧았다. 문득 ‘이곳을 몇 번을 걸어야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거문오름이란 곳을 너무 모른 채 사진을 찍어댄 것이 부끄러웠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만장굴'
이곳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1시간가량 동굴 속을 걷는다는 것과 사진으로 보여지는 그곳에 가서 나도 그렇게 찍어봐야겠다는 모방 본능이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만장굴 안은 시원했다.
많은 사람들이 2명, 3명, 가족단위로 얘기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실내가 어두워서인지 굴 안이 잘 보이지 않아 결국 사진을 포기하고 걷기만을 선택했다.
말없이 그곳을 걷는다는 것이 어색했다.
그동안해오지 못했던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그 장소에서 오로지 말없이 나 혼자 걸어야 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상원이와 그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어 졌다. 그리웠다. 사람이 그리운 장소였다.
누군가와 걸음을 맞추지도 내 욕구와 상관없이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이 원하는 삶에 집중하는 경험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늘은 그동안의 내 삶과는 다른 특별한 3박 4일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