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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이놀이터 Sep 22. 2016

아들과의 미국 여행

비행기 안, 시차 적응, 나이아가라 폭포, 건강식품, 영어, 가이드

8월 6일


비행기 안


내 자리라 선택했지만 좁은 공간 안에 앉아 있다.

오직 보고, 듣고, 먹고, 자고, 싸고.

일정한 간격으로 음료와 음식이 나오면 먹는다.

그리고 화장실에 간다.

때론 기체가 흔들리니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불이 꺼지면 잠을 자고 불을 켜지면 깨어난다.

그리고 멍하니 의자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런 내가 바보 같다.


문득 비행기 안이 내가 사는 세상을 압축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공간이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우리는 최대한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제한된 자유 의지가 있는 이곳, 편안한가?



8월 7일


시차 적응


6일 새벽 3시 대한관광리무진 전주터미널.
6일 새벽 6시 인천공항.
6일 오전 9시 미국행 비행기 출발
14시간 20분 비행 후 뉴욕 도착
2시간가량 차량 후 숙소 도착


아이가 시차 적응이 잘 안되어서 인지 미국에 도착해서도  계속 잔다.

공항에서 만나 같이 동행하게 된 어른들은 그런 상원이가 맘에 안 드는지 젊은 애가 더 시들시들하다며 한마디 한다.

나 또한 상원이가 불편하다.

아이를 신경 쓰느라 엄마인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여기 와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피곤함을 이겨내고 있는데 상원이는 너무도 편안하게 그리고 무기력하게 보일 정도로 잠만 잔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짜증 섞인 한마디를 한다. “왜 이렇게 잠만 자는 건데, 좀 일어나 봐” 아이는 눈치를 보며 일어난다.

하지만 저녁 6시쯤 숙소에 도착해서 알았다.

우리가 오늘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또 습관적으로 모르는 처음 만나는 다른 이를 배려한다며 내 아이의 힘듦을 봐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6일 새벽 3시 인천행 버스에 올라탔다.

2시간 반 버스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

14시간 넘는 비행, 좁은 공간 안에서의 불편한 잠, 미국 공항에서의 검문을 위한 1시간 이상의 기다림, 다른 나라로의 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우리.

많이 힘들었다.

다만 내 몸이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여행 욕심에 눈이 멀어 아이의 힘듦과 나의 힘듬을 보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고 말았다.

여행 첫날, 우린 저녁도 먹지 않고, 겨우 씻고, 저녁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잤다.


여행 오기 전에 2명의 상담사를 만났다.

나를 상담했던 란이 샘과

상원이를 상담했던 청소년 상담사

그 둘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번 여행은 머리로 하지 말고, 몸으로 하라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여행을 하는 목적보다는 그 과정의 완벽성에 더 신경을 쓰고 상원이 에게도 강요했다.

청소년 상담사는 상원이가 계획적인 여행이 힘든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기대에 맞추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란이 샘은 나를 위한 여행이 필요하니 책임의 무게로 다녀오지 말고, 계획도 짜지 말고, 어차피 패키지여행이니 편안하게 즐기다 오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또 머리로 여행하고 있음을 알았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아야 하는데 그 욕심이, 그 머리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긴 여행의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기다림, 몸의 힘듦에 힘들지 않다고 우기는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완벽할 수 없는 여행에서 완벽하지 못하다고 투정하는 내가 오히려 몸으로 잘 적응하고 있는 아이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8월 8일


나이아가라 폭포


갑자기 울컥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웅장함과 한없이 작은 나, 지금의 이 순간 느끼는 고마움.

그리고 서로의 껌딱지가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

참 많이도 컸다.

나의 기분을 살피면서 즐기는 아이를 보니 이제는 벗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커있었다. 어느 순간 아이와 나는 같은 환경 안에서 같은 무언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관계가 되었다. 아직까지는 내가 그의 보호자이지만 어쩌면 그가 나의 보호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상처라 불렀던 나의 애정결핍은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아이로 치유되어 가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늘 사랑받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나는 지금 넘칠 정도로 아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일하게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라고 말해주는 그가 고맙다.

그 사랑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하고 불행해했던 내가 안타깝고 그동안의 시간이 후회되었다. 왜 그렇게 안 되는 것들에만 집착하고 아파했는지...

아이의 사랑만으로 분명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이미 충분하다.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아이의 사랑은 나에게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8월 9일


건강식품


여행 중에 캐나다 국경 근처 쇼핑센터에 들렸다.

‘297달러’ 큰돈이다면 큰돈이고 저렴하다면 또 저렴한 돈.


근래 나의 몸은 운동으로 인해, 나이로 인해 관절염과 근육 염증이 자주 발생했다.

그런데 쇼핑센터에서 염증에 좋은, 캐나다에서 만든 품질 좋은, 효과 좋은 ‘아사이베리’를 추천했다.

방광염을 앓았던 어떤 분도 이곳에서 이 제품을 사서 하루도 빠짐없이 먹었더니 좋아졌다고 했다. 거기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자주 높아지는 나에게 주인장은 오메가3까지 권했다. 아사이베리 와 오메가3는 캐나다산이 제일 좋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이미 계산대로 갔고 남겨두었던 현금을 몽땅 쓰고 말았다.

결국 계획에 없는 현금을 쓰게 되었다.

선택관광 금액을 생각하면 큰돈은 아니었지만 약값으로는 큰돈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건강한 상원이는 갑작스럽게 남은 현금을 다 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전의 나처럼 말이다.

왜! 나이 드신 어른들이 건강식품에 그렇게 쉽게 속고 흔들리는지 오늘 문득 이해가 갔다. 늘 노인들의 그런 부분이 싫어 잔소리했던 나였는데 이제 내 아들에게서 그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엄마, 그거 충동구매 아냐?”

“거의 300달러인데, 그것을 꼭 사야 했어?”

아이는 짜증 섞인 말로 나에게 불편함을 표현했다.

갑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나면서 며느리의 말에, 아들의 표현에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이제야 공감이 갔다. 자식들은 그 돈을 아까워한다.

하지만 노인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건강하게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건강식품을 산다. 오늘의 나처럼.  

하지만 자식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너무 젊고, 몸의 아픔이 어떤 의미를 주고 절망을 주고, 또 두렵게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의 상원이처럼.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상황에서 나는 후회한다.

“우리 형편에 무리한 것일까? 충동구매였나?”

하지만 “아니지! 여행 중에 297달러조차도 내 맘대로 쓰지도 못하나? 명품을 산 것도 아니고, 내 건강 내가 챙긴다는데…….” 싶어 우울해지다가도 화가 나고, 후회가 되다가도 스스로 잘했다며 다독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너에게 쓰지 못하고 나에게만 많이 쓴 것이.

헉! 이것이 미안해할 일인가?

어른들은 쇼핑 때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갖다 댄다.

대신 아이들이 원하는 쇼핑에는 그들이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설득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다.

내가 그랬다.

관광 중에 오래된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상원이는 해리포터에 나올만한 가죽 공책을 사고 싶어라 했다. 30불.

나는 건강식품 쇼핑 사건을 잊은 채 꼭 사야 하냐며 사주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면서도 오래된 카메라를 장식으로 집에 두고 싶다며 고르고 있었다.

정작 내 것이 더 필요하지 않았고 비쌌음에도 내가 원한다는 이유로 구입하려 했다. 또한 상원이가 원했던 공책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설득하길 원했고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려 했다. 그의 마음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부끄러워졌고, 상원이가 원하는 공책을 사주었다.


마음을 자세히 본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힘든 것 같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힘든 것 같다.

돈으로 접근하면 힘든 것 같다.

좀 더 부유했으면 좋았을 여행이었지만 덕분에 돈이 아닌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녁에 문득 상원이는 생각한 것보다 이번 여행이 너무도 좋았다며 룰루랄라다.

사실 ‘297달러’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기념품 가게마다 들러 상원이가 원하는 것들을 다 사줬다. 돈 걱정 말라며, 다 추억이라며 말이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미국 여행에 대한 겁을 너무 줬다며 생각보다 행복하고 즐겁단다. ‘사랑해 엄마!’

어쨌거나 경제적인 것은 인간의 행복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8월 10일


영어


“상원아! 여기 콜라 2잔만 달라고 카운터에 가서 얘기 좀 하고 와!”

“내가 왜? 엄마가 해!”

“엄마는 영어를 잘 모르니, 네가 가서 얘기 좀 해!”

“싫어! 2 glasses of Coke please라고 해”

“넌 알면서 나를 시키냐?”



결국 함께 여행 온 사람들 앞에서 나는 버벅 대며 콜라 2잔을 시켰다.

영어를 놓은 지 오래된 나에게 “그것도 모르냐”며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아들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나고 나중에는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감은 낮아지고, 나 홀로 모르는 이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랄까!

미국에 도착한 이후 몇 번의 영어 질문과 대답의 상황에 놓인 나는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하지만 그는 무시했고, 나의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무시를 관찰했다. 그리고 그것을 농담 삼아 비웃었다. 그것도 모르냐며... 서운함이 턱까지 밀려왔다.

여행 안에서 우린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어야 했지만, 아이는 아직 어리기에 외국에서 외국인과 대화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인 나에게 그 두려움을 대신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아이에게 화를 냈다.

나를 왜 도와주지 않냐 며, 힘든 일도 아닌데 알면서도 왜 그 상황에 대신 말해주지 않느냐며 오히려 남보다 못한 사이 같다며 서운하다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말한 나를 서운해했다. 자기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나는 안 힘들겠냐며 아이도 두렵다고 했다.

왜 그러한 감정을 말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엄마보다 더 잘 해야 하는데 잘 몰라서 쪽팔려서 말하지 못했다고, 행동하지 못했다고 했다.

간만에 여행지에서 우린 싸웠고, 앞으로는 힘들어도 서로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했다. 말하지 않으면 엄마라 해도 모르니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도 이해하고 노력해보겠다고 말이다.

그 후로 우린 서로 돌아가며 할 수 있는 영어들을 했고, 서로 부끄러워했고, 서로 대단하게 여겼다.



8월 11일


가이드


보스턴 여행을 신청한 사람이 나와 상원이 뿐이라 운 좋게 개인차로 개인 가이드가 붙었다. 하버드대, MIT대, 예일대 관광이 들어가 있는 상품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상원이 공부를 위해 선택한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상원이가 원한 코스였다. 하버드대 급식실이 해리포터에 나온 큰 강당이니 꼭 봐야 한다며 넣은 것이었다. 나로서는 어이가 없지만 상원이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코스였으리라 생각하며 넣었다.


가이드 차로 거의 4시간을 가야 하는 그 사이 처음 만나는 가이드와 어색했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민 생활에 대한 이야기

일에 대한 이야기

개인 생활에 대한 이야기 등

그는 얘기했다.

이민을 오면 잘 살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곳의 세금은 거의 폭탄 수준이며 아무리 많이 벌어도,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 세금을 유지하기 바쁘다며 한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했다면 뭐라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결국 여행 가이드까지 오게 되었다며 이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바램이 그가 흘리는 땀으로 느껴졌다.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외국에서의 청년 성공사례를 보면서 나는 많이 불편했다. 왜 한국에서의 희망 없음을 얘기하며 청년들을 타국으로 내보내려 하는지 꼭! 과거 외화벌이를 위해 탄광을 권했던 우리나라가 생각이 났다.

지금은 탄광이 접시 닦기, 청소, 서비스업으로 변경되었지만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현재를 잠시 유예하듯 외국에 가서 일을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무도 없고, 아무 자원도 없는 그곳에서 죽을힘을 다해 버티는 청년들의 삶이 가슴 아팠다.

이 가이드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을 감내하며 견디고 있어 보였다.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마냥 좋은 듯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지만 나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만 다닌다는 그 대학 캠퍼스에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8월 12일


돈을 찾아라!


“카드가 안 됩니다.”

“왜요? 어제까지 썼는데”

하늘이 노래지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나밖에 없는 카드가 안 된단다.

현금도 없고, 앞으로 남은 가이드 팁과 선택 관광이 남아있는데 이를 어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 혼자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있지만 아이가 옆에 있는데 돈 없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외국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리고 멘붕이 왔다.

난처함에 걱정에 현금을 구할 방법들을 이리저리 생각해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가이드에게 돈을 빌려 달라할 수도 없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돈을 부쳐 달라하기도 애매하고, 내일이면 다른 가이드, 다른 여행지로 바뀔 텐데 선택관광 신청은 그렇다고 해도 남은 가이드 팁은 어떻게 하지 등등...

외국이란 곳은 그랬다.

가진 것이 많으면 불편함이 없지만 자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돈이 없을 경우에는 그 두려움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라! 였다.

혹시나 해서 호텔로 들어와 카드결제를 하려 했지만 이곳에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잔돈을 탈탈 털어서 라면을 먹고 잠을 청했다.

아는 은행 후배에게 카톡을 보내 카드가 되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가맹점마다 안 되는 곳도 있으니 다른 곳에서 다시 한번 해보라는 거였다.

“만약에 안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아이는 나의 두려움을 눈치챘는지 걱정하기 시작했고, 계속 물었다.

“어떡해?”

헉! 다행히도 카드가 되었다. 이제 현금을 찾아야 한다.

지난날 건강식품 구입으로 현금이 하나도 없어 더 불안했다.

가이드 팁이라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현금인출기를 찾았다.

던킨도넛 매장에 현금인출기가 보였다.

우린 기도하는 마음으로 카드를 넣고 현금인출을 눌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된다. 현금을 찾았다. 그제야 그곳이 다시 여행지가 되었다.

어제저녁만 해도 그곳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때서야 이민자들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을 다 쓰고 난 후에 그들에게 닥친 가난은 어떤 것이었을까?

가족이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문득 어제 만난 가이드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라는 생각도, 의존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어느 누구에게 기댈 수도 없고 오로지 본인의 힘만으로 견디고 이겨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더욱더 절실하게, 두려움을 견디며,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전에 나는 이민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이민은 “꼭! 이 방법뿐이야?” 라며 말리고 싶은 그것이 되었다. 타국에서 견딜 그 힘으로 여기서 가족과 친구와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이번 여행처럼 돈이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돈이 무서웠다니!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나는 가끔 그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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