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 나왔습니다만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by 신작가

나는 전문대를 졸업했다. 그것도 경기도 양주라는 곳에 있는 작은 전문대다.

학교를 다닐 때는 나름 과대표도 하고, 서술형 시험을 좋아해서 그런지 성적도 꽤 잘 나왔던 편이어서,

1학기 빼고는 전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었다.


내가 전문대에서 관광학과에 들어가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그때 당시 고등학생 때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H투어에 들어가기 위해 관광학과를 공부해야 했고,

정확한 방법은 몰랐지만 어림잡아 관광학과를 졸업하면 저곳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관광학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대학 생활과는 꽤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학교는 집으로부터 1시간 넘는 거리에 있었고,

집부터 학교 근처 지하철 정류장까지 다니는 열차는 1시간에 한대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 학교를 졸업해서 H투어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며

들뜨는 마음으로 교수에게 물었다.


나 : 교수님! H투어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수님 : 본사 입사를 말하는 거라면 너는 갈 수가 없단다. 전문대는 입사를 할 수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을 내게 했던 교수는 아직 교수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당시 내가 시도해 보기 전까지 안된다는 말은 안 믿는 주의라 무시하고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민속박물관에서 알바를 하며 근근이 생활비를 마련하며, 겨우겨우 학교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인쇄공장에서 3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아마 그 돈과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그 학교조차도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겨우겨우 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 1학기가 끝났고, 한 학기가 남았는데, 내게는 학교를 다닐 돈이 없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교통비와 식비 등 여러 가지 생활비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더 이상 이렇게 계속 먼 거리를 오가며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2학년 2학기 전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방학 동안 실습을 할 기회를 주고 있었고, 마음이 급한 나는 실습을 통해 취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아마도 학과 교수는 기업에 관계돼 있는 사람들과 따로 연계하여 취업을 연계시켜주는 듯했고, 아마 저런 식으로는 H투어에 못 들어갈 것이 뻔해 보였다.

나는 H투어 홈페이지에서 전문대졸 중국 OP 또는 수배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고, 마침 중국어를 까먹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며 중국어가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한치의 고민 없이 지원을 했다.


그때 당시 인턴 6개월 이후 정직원 전환이라는 조건이었는데, 나는 인턴이던 정직원이던 청소부로 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면접이 시작됐고, 나는 미리 H투어의 면접 족보와 경쟁사와의 관계, 재무제표를 꼼꼼히 살펴봤고, M투어와의 개별여행 분야 경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연구했던 부분을 모두 얘기했다.

아마 그때 당시 내가 읽었던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글을 보지 못했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인턴에 합격할 수 있었고, 6개월 동안의 성공적인 직장 생활로 인해 2차 정직원 전환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2차 면접은 사장님이 직접 면접을 보셨는데, 그때 당시 내 이력서에는 취미가 춤으로 나와있었다. (나는 클럽을 참 좋아했었다.) 설마 시켜보겠어? 하고 적었는데 3대 1 면접임에도 내게 무반주로 춤을 춰보라 하니 너무 창피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다.

결국 어쭙잖은 춤을 추게 되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분에 당당히 정직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정직원 전환 후 교수에게 몇 차례 확인을 시켜줘야 했다.

그 교수님은 대리점 취업이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본사 입사라고 재차 확인시켜주며 명함을 건넸다.

다행히 한 학기는 취업계로 무사히 충당할 수 있었고, 덕분에 졸업도 무난히 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내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그 교수를 찾아가 명함을 건네며 당당히 말했다.


교수님 "안 된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했던 나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내가 유일하게 불가능하다는 말에 빅엿을 날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 뒤로 더 이상 내게 안된다느니, 불가능하다느니,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 내게 안될 거 같다고 말한다면

그냥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공중에 날려 보낸다.

나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렵다는 말도 듣지 않는다. 처음 해보는 시도는 당연히 어렵고 고통스럽다. 안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해보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 마음먹고자 하면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안 되는 것은 없다. 세상은 계속해서 내게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따위 되지도 않는 조언은 듣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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