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인에게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이 있다. 삼촌이라 부르지만 사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다.
고모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분인데,
내가 군대에 다녀오는 동안 고모와 자주 교류하면서 지내셨던 듯하다.
군대에 다녀와서 대학교에 복학을 하고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군대에 가있는 동안 아버지가 집을 김포로 이사하는 바람에 학교와의 거리가 2시간이 넘게 되어버렸다.
그놈의 대학교가 뭔지 어떻게든 졸업은 해야 되는데, 도저히 2시간 넘는 거리를 왔다 갔다 할 엄두가 안 났다.
당장 자취할 돈을 모아놓지도 않아서, 군대 전역하자마자 열심히 알바를 해서 적당한 생활비를 모아뒀다.
하지만 그래도 자취방을 구하기에는 보증금에 월세에 통학비에 생활비까지 생각해보니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정말 다행히도 내 고민을 듣던 고모와 삼촌이 흔쾌히 삼촌네 집에서 지내는 걸 허락해주셔서, 삼촌과 나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아현동에 낡고 허름한 골목길을 지나서 어두컴컴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2층에 있는 작은 집인데, 거기에는 고양이도 있었다.
이놈은 내가 맘에 안 들었는지 내 책과 신발에 소변으로 환영식을 해줬다. 고양이 소변 냄새가 그렇게 지독한지 몰랐다. 몇 달간 그 냄새 때문에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그래도 그나마 맘에 들었던 부분은 내 가장 가까운 친구 준영이와 5분 거리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준영이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이 집에서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집에 지내고 있을 때 회사에 합격을 했고, 인턴을 지나 정직원이 될 때까지 나는 이 집에서 지냈다.
인턴생활 때 월급은 너무 쥐꼬리만 해서 도무지 자취를 할 수 없는 금액이었는데, 삼촌이 아니었으면 충당하기 힘들었을 거다.
삼촌은 내가 남인데도 불구하고 가족처럼 날 챙겨주셨다. 아니 그냥 가족이나 다름이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서 삼촌한테 이런저런 하소연을 털어놓으며 삼촌과 소주 한잔 하던 시간들이 좋았다.
재개발이 확정된 집이라 난방이 잘 안됐는데, 겨울에는 찬 바람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와 코를 차갑게 얼리곤 했다.
그런 삼촌이.. 암에 걸리셨다. 안 그래도 말랐던 몸은 더 말라있었고, 머리는 다 빠져버렸다.
아직 은혜도 갚지 못했는데, 말기 암이라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삼촌 제가 갈 때까지 살아계셔요. 삼촌 은혜에 보답할 시간을 주세요."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은혜를 갚지도 못한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긴 싫다.
다행히 호전되어 암세포가 90%였다면 지금은 50%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항암제가 너무 강한 탓에 생니가 빠지고 곧 틀니를 맞추러 가신다고 하신다.
삼촌 혼자서 그 힘든 고통들을 견뎌낼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하지만 난 삼촌을 믿는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삼촌은 회복할 것이고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갚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우리 삼촌을 위해 기도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