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의 자아에 대하여
나는 천주교 신자다. 그것도 꽤 신실한 천주교 신자인데, 본격적으로 성당을 다니게 된지는 사실 얼마 되지는
않았다. 성당에 열심히 나가지 않았을 때는 교구에서 하는 행사 같은 것들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본격적으로 성당 전례단에 참여해서 봉사도 하고, 성당 일에 깊게 관여하다 보니 여러 가지 행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창세기 연수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선발된 사람만 연수를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보통 연수를 받기 전에는 미리 연수를 갔다 온 경험자들과 함께 창세기 전반의 교리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공부하면서 정리해놓은 학습노트를 교구에 제출하면 선발되어 연수에 참가할 수 있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이 되어 연수를 참석하게 됐다. 솔직히 처음에는 핸드폰도 며칠간 압수당하고 하루 종일 기도만 하고 노래를 한다 길래, 흡사 사이비 종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휴대폰 반납은 자유의지로 내는 것이었고, 힘들거나 하기 싫은 사람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행사가 좀 우스꽝 스러워서 진지하게 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커리큘럼은 보통 조가 만들어지면, 그 조 사람들과 성경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성경 구절을 읽고 그 구절과 내 경험을 결합해서 말씀을 나누는 그런 형식이었다.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고, 분위기 덕분인지 그런 이야기들이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서로 존중하며 말하고 들었다.
연수가 끝나기 전날 밤 침묵의 시간을 갖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고해성사를 하는데, 연수에서의 고해성사는 다른 일반적인 고해성사 와는 달리 칸막이 없는 한 공간에서 신부님이 신자의 얘기를 듣는 형식이었다.
조원이었던 사람들에게 "창피하게 울지 마세요!" 이러면서 장난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았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돼서 신부님 앞에서 고백을 늘어놓자니 가슴속 응어리 진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왜 하느님은 제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고모의 남자 친구에게 죽도록 맞게 내버려 두셨나요?" ,
"왜 제게서 저의 어머니를 데려가셨나요?", "왜 저의 삶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셨나요?", "왜 가족들은 다 저를 싫어할까요?"
나는 그동안 하느님께 꼭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내뱉고 뒤이어 내 잘못들을 고백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너무 미워서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는 저 때문입니다."
고모는 내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슬퍼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종호야, 너 엄마 미워했었잖아. 너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어."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나 자신도 너무 미웠고 그 말을 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누군가 내 심장에 칼을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젓듯 죽도록 아팠다.
그러자 신부님은 내게 말했다.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당신 자신을 토닥여주세요.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과거의 당신을 용서해주세요."
나는 답답하게 눌려있는 감정을 가슴에 담아둔 채 내려와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조용히 명상을 하며 과거의 나의 형상을 끄집어내서 대화를 건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안녕 다른 종호야, 많이 아팠지? 그동안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줘서 고마워.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주느라 너무 고맙고 고생이 많았어. 고맙다 이제 좀 쉬렴"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울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폭풍처럼 감정이 휘몰아쳤고 묵혀뒀던 모든 감정을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밝게 보이기만 하던 종호 씨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걸 보고 제가 다 마음이 아파서 울었어요." 한 조원이 내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자아는 있다. 그 어두운 자아를 떠나 보낼 필요는 없다.
과거의 당신에게 큰 죄책감이 남아있다면 과거의 당신을 용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