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알게 된 사촌 형의 존재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하던 대로 샤워를 하고 요리를 하고 확인 못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잘 연락을 안 하던 터라, 딱히 연락 올 곳은 없었지만 나름 멜버른 정보를 공유하는 단톡 방은 꽤 수다스러워서 염탐하는 재미로 자주 카톡을 확인하고는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할 일을 다 마치고 카카오톡을 확인하는데, 등록되지 않은 사람에게로부터 카카오톡이 와있었다.
누구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해도 도무지 누군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다만, 프로필 배경화면에 나와있는 두 부부의 사진 중 여자분의 얼굴이 너무 낯익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잘 지내지? 너 혹시 형 기억나니? 내가 너 사촌 형이야.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날지 모르겠지만 너 엄청 어렸을 때 내가 너 되게 아끼고 좋아했었어."
나는 혹시나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바로 고모에게 연락을 해 물어보았다.
"아니, 너 사촌 형 없어. 나랑 너네 아빠, 동생, 너 사촌 여동생 말고 없어."
고모는 내게 없다고 했지만, 아마 외가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아마 기억 안 날 거야. 어른들끼리 갈등이 있었는지, 너네가 아버지하고 중국으로 떠나고 나서 아무도 너나 아버지나 동생이나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했어. 형도 영국에 쭉 있다가 최근에 결혼하기 전에 너네 생각이 너무 나서 동사무소까지 수소문해가며 찾아다녔단다. 이렇게라도 연락이 돼서 다행이야."
아마도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외가 쪽 분들과 연락을 끊고 중국에 간 뒤로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아 생긴 일인 것 같았다. 어렸을 때 한번 왜 아버지는 다른 가족들과 연락을 다 끊고 사냐고, 이제는 다 연락해서 찾아뵙고 서로 얼굴이라도 알고 지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하며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던 기억이 났다.
30살이 될 때까지 나는 어머니에게 언니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보았던 분들이 어머니의 언니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죄책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왠지 어머니가 도와주신 것 같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사촌 형과 어렸을 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하나둘씩 깨닫게 됐다.
나는 동생이 나보다 더 장난꾸러기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그게 다 나를 보고 배운 거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에서 제일 장난꾸러기는 동생인 줄 알았더니.. 이런 걸 기억 왜곡이라고 하나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사촌 형을 많이 아껴주셨고 그래서 아직도 우리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남아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촌 형은 삼성에 취직하여 런던에 살고 있고, 영국 시민권자라는 얘기를 듣자 부러우면서도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과 정반대로 꽤 부유한 삶을 살았던 것 같아 한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버렸을 만도 한데, 동사무소까지 찾아다니며 우리를 수소문해 다녔다는 것이 뭔가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왜 나는 가족들한테 피해만 주는 걸까? 왜 나는 가족들하고 잘 지낼 수 없는 걸까? 하며 스스로 자책하면서 살았었다.
아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가족들로부터 느끼는 따스함이라는 감정을 많이 못 느꼈던 것 같다.
아, 내가 많이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한때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었구나. 나도 사랑받았던 과거가 있었구나. 하면서 사랑받았던 날들이 조금씩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른들끼리 다 이유가 있어서, 서로 연락 안 하고 사신 거 같아. 하지만 나는 너하고 너 동생이 보고 싶어서 찾아서 연락한 거고, 어른들은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 거고 우리는 서로가 보고 싶으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
형으로만 지내다가, 동생이 되어보니 왠지 모를 든든함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삶이 여유로워지고 자리가 잡히면 외가 친가 쪽 친척분들을 전부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