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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정말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직업을 잘못 선택하면 생기는 일

by 신작가

정장을 입고 나 같은 정장 입은 사람들과 8000번 버스를 타고 종로에 출근을 하고는 했었다.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기 위해 같이 줄을 서고, 비좁은 버스 안에 앉아 책을 읽거나 쪽잠을 잤었다.

그러다 광화문역에 내려서 이순신 장군님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종각역으로 걸어가 출근을 했다.


그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신체적으로 힘든 일에는 이골이 나있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아침 맥모닝을 가지고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행복하다 느끼고는 했었다.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머리가 깨질 듯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대리점 사장님들과 한바탕 하고 나면 회사 동기들과 모여서 12시가 지나도록 술을 먹으며 사장님들 험담을 하고, 집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서 겨우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었다.


첫 인솔자 출장이 배정됐던 날 손님들의 비자 서류를 혹시나 잊어버리고 공항에 못 가져갈까 봐 손에 꼭 쥔 채 잠도 못 자고 밤을 새워 퀭한 눈으로 공항에 도착해서 손님들을 맞이했었다.

아마 비행기를 탄 횟수라면 누구에게 적게 다녀오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지 싶다.


여행.. 그때는 이 여행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소중한 것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고객들이 컴플레인을 걸 때마다 불평을 하고는 했다.

거래처 사장님들이 싫은 소리를 하면 내일이 아닌 것 마냥 외면하기도 했고, 아쉬울 때는 아쉬운 소리 하며 아부를 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소소한 하나하나의 일들이 소중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 스트레스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었고, 그 컴플레인들이 있었기에

하루하루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랬던 그 회사가 나의 3년 이상의 추억이 서려있는 그 종각의 본사 건물이 매각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퇴사하면서 빌어먹을 회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본사 건물이 매각되었다고 하니, 나의 첫 직장의 추억이 담겨있는 본사 건물이 다른 회사에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욕할 때는 빌어먹을 회사였는데, 막상 주위에서 그 회사 망했다 하면 괜히 나도 모르게 괜스레 화가 난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행사가 들어가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교를 관광학과에 진학했다. 여행이 가고 싶었던 것인지 여행업이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몰랐다. 그냥 여행사가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여행업이 내 적성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회사 후배 중에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부러웠고, 그 사람 말을 듣고 단번에 결심을 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혹시나 체 게바라처럼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에 가서 그 나라를 위해 싸워주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코 시기가 오기 전까지..


여행.. 예전처럼 되는대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서럽기만 한건, 나뿐만이 아니겠지만..

여행이 죽도록 하고 싶었고 지금도 죽도록 하고 싶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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