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 BYE 감상평
문득 구글 포토에서 몇 년 전 찍은 사진이라며, 내게 삿포로에 여행을 갔을 당시의 추억을 추천해줬다.
도쿄도 안 가봤는데 회사에서 운 좋게도 저렴하게 항공권 추첨에 당첨이 돼서 삿포로에 유류할증료만 내고
회사 동기 형들과 함께 갔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일본에서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일본 영화가 보고 싶어 졌다.
일본 영화가 보고 싶을 때면 주로 <너의 이름은> 같은 정말 일본을 여행하는 것 같은 영화를 주로 보고는 했는데, 그날따라 비도 오고 뭔가 감동적이면서도 작품성이 좋은 작품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GOOD & BYE>라는 영화가 내 눈에 들어왔다.
줄거리는 첼리스트인 다이고라는 주인공이 연주하던 교향악단이 문을 닫자, 새로운 살길을 찾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고향에서 여행사 직원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여행사가 아니라 죽은 자의 여행을 돕는 염습을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주위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기만의 신념을 가지고 납관사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납관사 일을 해나가면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다이고의 친구 야마시타는 자신의 어머니 야마시타 츠야코에게 50년 넘게 운영하던 목욕탕을 팔라고 하지만 츠야코는 단골들이 많기 때문에 팔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지속적인 운영을 고집한다.
그러다 츠야코는 목욕탕에서 일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다이고에게 납관을 받게 된다.
이때 장례식장에서 야마시타는 츠야코가 화장에 들어갈 때 울부짖으며 어머니에게 미안하다 말한다.
장례사로 일하던 츠야코의 50년 단골이었던 히라타 쇼키치는 여기서 죽음에 대해 명대사를 남긴다.
이런 일 하다 보면 곧잘 생각하게 돼. 죽음은 문이라고 말이야. 죽는다는 건 헤어짐이 아니라 다음 세상을 맞이하는 문이라고.
가나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관악을 들고 춤을 추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장례식에 저렇게 신나게 춤을 출 수가 있지?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이런 이론들은 많은 종교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즘 내가 열심히 읽고 있는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책에 보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념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다이고가 다리 위에서 개천을 오르려고 열심히 헤엄치는 연어 떼들을 보며 묻는다. "왜 저렇게 열심히 물살을 헤치며 가는 걸까?", 지나가던 히라타 쇼키치는 말한다. "돌아가고 싶은 거겠지."
그렇다 우리는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죽음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행위인 동시에 다시 시작하는 시작점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이 영화는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다이고의 가정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주검이 되어있는 아버지를 맞이하게 된다. 납관사인 다이고는 다른 납관사가 아버지의 납관을 대충 하려고 하는 걸 보고 분개하여, 직접 염습을 하게 된다. 이때 '돌멩이'의 역할은 나를 엄청난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아버지 손에 쥐어있던 돌멩이를 임신한 아내의 배에 대고 서로를 사랑의 눈으로 쳐다보는 장면은
비혼 주의로 살고 싶다던 내 친구의 관점마저도 바꾸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죽음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내 장례식은 좀 신나게 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나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나는 죽을 것이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누가 아는가 어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