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필사 18(#170)
알맞은 정도의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다만 도를 넘어서면 소유가 주인이 되고,
오히려 소유하는 자가 노예가 된다.
- 니체
무언가를 소유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소유가 어느 순간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물건의 주인이 아니라 물건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중요한 건 ‘알맞은’ 소유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김종원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옷에 상처가 나 입을 수 없을 때, 별문제 없이 버리고 다시 같은 옷을 살 수 있을 때가 나에게는 알맞은 소유의 기준입니다."
이 말은 물건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볍게 버릴 수 있는 마음이, 물건을 더 깊이 아끼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든 다시 살 수 있다는 여유는 집착이 아닌 애정을 낳고, 필요 이상으로 쥐고 있지 않으니 물건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소유가 많다고 풍요로운 것은 아닙니다. 정작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건, 무엇을 가질 것인가 보다 무엇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내가 다스릴 때, 그제야 진짜 나다운 삶이 시작됩니다.
물건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곧 자유입니다.
100억을 가진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단돈 100원을 가지더라도
그 물건의 주인이 되는 게 아름답다.
그는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니까
- 김종원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주변에는 수백 켤레의 신발을 거실에 전시해 놓고, 그것을 바라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입의 큰 부분을 신발에 쓰고, 그것을 소유하는 기쁨으로 하루를 채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전거 열 대를 집 안에 진열해 두고, 바라보며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기도 합니다.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건을 좋아하고, 애정을 갖는 일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요. 문제는 그 애정이 점점 ‘소유욕’으로 변할 때 시작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놓지 못하는 마음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많이 가진다고 해서 풍요롭지는 않습니다. 소유는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오히려 우리를 가둡니다. 소유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면, 내가 지금 가진 물건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 물건이 없어진다고 해서 내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그 물건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없으면 불안하고 지금 당장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어 견딜 수 없다면, 나는 이미 그 물건의 ‘노예’ 일지도 모릅니다.
‘알맞은 소유’란 물건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 언제든 놓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말합니다. 그런 여유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물건을 더 아끼고, 감사한 마음으로 오래 곁에 둘 수 있게 됩니다.
소유가 곧 자유가 되는 삶. 그건 많이 가진 삶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의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한 켤레의 신발, 자전거 한 대, 혹은 책상 위의 낡은 볼펜 하나일지라도,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그것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면, 이미 풍요롭고 자유를 즐기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