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필사 20(#172)
세상에는 우리의 침울한 두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이상의 행복이 있는 법이다.
- 니체
온라인에서 불편한 글을 보면 종종 이런 댓글을 보게 됩니다.
“나만 이 글 불편한 거야?”
“여기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거야?”
“나만 이렇게 생각해?”
이런 표현은 조심스럽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이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흔 이전에는 타인의 생각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마흔을 넘겼다면, 이제는 ‘나의 시선’을 중심에 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이 글, 좀 불편하네.”
“그 표현은 낯설게 느껴진다.”
“이 음식, 전보다 짜게 느껴져.”
이렇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 감정과 해석을 타인에게 확인받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자신의 언어로 감정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덜 흔들리고 중심을 잡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늘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라는 말 뒤에 숨는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감정이 진짜였는지도 헷갈리게 됩니다.
성장은 언제나 ‘나’를 인정하는 말에서 시작됩니다. 마흔 이후의 우리는, 스스로의 느낌에 당당할 자격이 있습니다.
마흔 이후에는 상대의 평가를 기다리지 말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당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 김종원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흔 이후라면, 사소한 감정 하나에도 내 생각과 느낌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저도 늘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옷을 사고도 친구 반응을 살폈고,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주변의 눈치를 봤습니다. 최근에는 공저로 책을 냈는데, 출간 후에도 기쁨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라는 마음이 앞섰지요.
그 책은 저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오래된 상처를 꺼내 썼고, 글을 쓰며 스스로 위로받았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던 작업이었지요.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과 취향으로 감상을 말합니다. 그 말들이 내 진심을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마흔이 넘었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신뢰해야 합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쌓은 판단력과 취향은 가볍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이번 글은 내가 마음을 다해 쓴 글이다.”
“이 옷, 내가 참 마음에 들어서 산 거야.”
자신 있는 표현은 곧 자기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더 이상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야?”라는 표현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나는 이렇게 느낀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