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반복해서 일어난다. 우리 자신의 천성이 그렇게 규정하기 때문이다. - 괴테
일본 작가의 단편소설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네 명의 소년이 타임캡슐을 묻으며 장래희망을 약속했습니다. 세 소년은 의사, 경찰, 변호사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지요. 하지만 마지막 소년은 꿈이 없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따라 수줍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 사람이 될게.”
20년 후, 세 소년은 정말로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없던 네 번째 친구는 여전히 타인의 삶 주변을 따라다녔습니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대중의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착한 친구’라는 가면 뒤에 숨어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의사가 된 친구가 살해당합니다. 범인은 놀랍게도 꿈이 없던 그 친구였습니다.
경찰인 친구가 그를 잡았고, 변호사인 친구가 그를 변호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약속을 지켰어. 내가 범인이 되어 너희를 완벽한 경찰과 변호사로 만들었고, 죽은 친구는 영원한 의사로 남게 했으니까.”
자신만의 생각 없이 타인의 목적에 나를 맞추는 삶은 비극입니다. 네 번째 친구의 잘못은 악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각본 속에서 소모되어 버립니다.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영혼은 결국 뒤틀린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들기 마련이지요.
많은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며 산다고 믿지만, 실상은 타인의 의견에 기대어 대중의 유행을 내 취향이라 착각하곤 합니다. 배우고 살아가도 변화가 없는 이유는 ‘자기 성찰’이라는 필터 없이 지식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천성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주변에는 늘 반복적인 일과 비슷한 수준의 불행만이 되풀이됩니다.
이 반복의 굴레를 끊는 방법은 ‘생각’하는 것이고, 그 생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도구는 바로 ‘글쓰기’입니다. 하루 30분, 자신을 성찰하는 글을 쓰는 행위는 흐릿한 천성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을 ‘글’이라는 물성으로 붙잡아두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관성의 노예로 돌아가게 됩니다. 글쓰기는 재능의 영역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적어서 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다시 남길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종이 위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매일 적어 내려가는 사람은 결코 남의 인생을 사느라 자신을 낭비하지 않지요.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인생은 타인이 쓴 대본을 연기하는 배우와 같습니다. 하지만 쓰는 사람은 스스로 대본을 쓰는 작가가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살고 싶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그것을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당신이 써 내려간 한 줄의 문장이, 어제와 같은 내일을 거부하는 가장 강력한 용기가 됩니다.”
재능이 없다는 변명은 이제 접어라.
글쓰기는 결코 재능이 아니다.
당신이 쓸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한다면,
손가락은 저절로 글을 써낼 것이다.
- 김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