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세계가 무너질 때 성장은 시작된다.

by 별빛소정
나의 세계와 삶이 과거가 되며 나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얼어붙는 가슴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쓰디쓴 죽음의 맛을 경험했다. 그것은 두려운 새 삶에 대한 내 불안한 마음이 만든 탄생이었다. -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안온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쓰디쓴 죽음의 맛’을 느꼈습니다. 헤세에게 성장이란 단순히 나아지는 발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처절한 ‘탄생의 통증’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장을 화려한 꽃길로 상상하지만, 본질은 상실에 가깝습니다. 내가 믿어온 가치관, 나를 보호하던 울타리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쓰디쓴 고통’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유년시절은 온통 거제도의 푸른빛이었습니다. 왕복 두 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엔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내가 아는 바다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5학년때, 대도시 부산으로 이사오며 나의 세계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도시의 학교는 순수한 여유 대신 빽빽한 열기와 날 선 긴장감이 가득했습니다. 시골 학교에선 들어본 적 없는 ‘학원 레벨’과 ‘심화 학습’이 친구들의 화두였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경쟁’이라는 낯선 언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믿어왔던 순수한 즐거움이 도시의 잣대 앞에서 촌스러움이 되었을 때, 나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헤세가 말한 대로 내 유년의 세계가 죽어가는 맛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라는 차가운 벽에 부딪히며 보낸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알 밖의 세상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과거라는 얼음을 깨고 나아가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만납니다.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며 도전 없이 사는 사람은 한계를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더 깊이 사색하고 탐색하는 사람일수록 자꾸만 자신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지금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지금의 세계보다 더 커졌기에, 그 껍질이 답답해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성장은 내가 사랑하던 세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그 파편을 딛고 일어서는 투쟁입니다. 한계를 만난다는 것은 절망의 신호가 아니아 ‘성장의 예고편’입니다. 한계를 극복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늘 성공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내 삶의 한계를 느낀다.
그건 주어진 일을 할 수 없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신호다.
-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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