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느긋한 늦잠을 깨운 건 휴대폰 알람이었습니다.
"진아어마방에탤래비가안나온다"
띄어쓰기도, 미사여구도 없는 엄마의 문자였습니다. 평소 문자 발송에 서툰 엄마는, 주말 아침 잠든 딸을 깨울까 봐 수십 분을 낑낑대며 이 문장을 완성했을 것입니다.
급히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TV가 나오지 않아 좋아하는 <미스트롯 4>도 못 봤다고 하십니다. 평일엔 회사 다니는 딸이 번거로울까 봐 며칠을 견디다 보낸 연락이었습니다. 엄마는 "황 서방 있나? 테레비 좀 고쳐달라 해라"라며 사위를 찾으셨습니다. 집에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엄마는 늘 전자회사에 다녔던 사위를 해결사로 부르십니다.
남편과 함께 엄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껐다 켜면 해결된다는 나름의 솔루션을 품고 말이죠. TV가 안 나오는 이유는 멀티탭 전원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위치를 톡 하고 누르자 TV가 환하게 켜졌습니다. 전원 버튼 하나 올리고 남편은 해결사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방을 나왔습니다.
엄마는 사흘 동안 고았다는 소머리곰탕을 내어주셨습니다. 고작 스위치 하나 눌러주고받은 밥상이라기엔 과할 정도로 정성이 가득했습니다. 뜨끈한 국물에 갓 지은 밥을 말아먹으니, 속이 뜨끈해지며 마음이 노고노곤 풀렸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아버지와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스무 살의 엄마는 창극을 보러 가자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나섰다가, 영문도 모른 채 맞선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키가 멀끔했던 총각이 밤길을 데려다주었고, 그날부터 총각은 매일 담배를 피우며 엄마 집 앞을 서성거렸습니다. 온 동네에 소문이 나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갔다는 엄마의 레퍼토리는 수십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휴대폰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엄마의 표정, 말투, 공기의 흐름까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십이 넘은 나이지만, 엄마는 여전히 저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입니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도 엄마 곁에만 있으면 다시 만땅으로 채워집니다.
부쩍 기력이 약해진 엄마를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엄마가 차려준 음식, 엄마의 목소리, 그리고 엄마가 살아온 세월을 담은 이야기들까지.
오늘의 다정함은 엄마입니다. 다정함이란,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어코 붙잡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