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에 뼛 속까지 시린 날이 이어졌습니다. 뜨끈한 곰탕이 생각났습니다. 식당에서 한 그릇 사 먹어도 되지만, 집에서 끓이는 그 맛이 그리웠습니다. 친정어머니는 겨울마다 펄펄 끓는 곰솥으로 곰탕을 끓이셨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연세가 드셔서 곰솥을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을 버거워하십니다. 사골 끓이는 냄새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같았습니다. 뜨끈한 곰탕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먹고 나면 몸에 열이 나고 추운 겨울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니 어머니의 곰탕이 무척이나 그리워졌습니다.
마음을 먹고 보니 한 번도 곰탕을 끓여보지 않아 큰 솥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이제 너도 곰솥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구나” 하시며 쓰시던 오래된 큰 솥을 내어주셨습니다. 평생 남길 부모님의 유산을 받듯, 커다란 곰솥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장에 가서 사골을 살 필요도 없이 인터넷으로 꼬리, 우족, 사골이 섞인 곰탕 세트를 구매했습니다. 하루 종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냈습니다. 핏물을 뺀 뼈를 가스레인지에 올려 한 번 끓여 물을 버리고 뼈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제부터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뼈와 찬물을 넣고 오랜 시간 고으기 시작했습니다. 3~4시간 정도 끓이자 물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국물만 따라 베란다에 두니 지방이 위로 하얗게 굳었습니다. 지방을 걷어내고 뼈는 다시 찬물에 넣고 3~4시간 우리기를 세 번 반복하자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뼈에 붙은 살과 콜라겐이 녹아났습니다.
양지머리를 따로 구입해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1시간 정도 삶아 고명도 만들었습니다. 세 번 고은 곰탕의 기름기를 제거하고 합치니 한 냄비 가득 만들어졌습니다. 파를 송송 썰어 넣고 소금과 후추를 넣으니 맛있는 곰탕이 완성되었습니다. 곰탕은 특별한 양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정성으로 만드는 음식이라 엄마가 끓였던 맛과 비슷했습니다. 사골 국물로 떡국도 끓이고 만둣국도 끓여 먹었습니다. 양지머리 고기를 얇게 저미고 국수를 삶아 설렁탕도 만들었습니다. 고추기름을 만들고 콩나물과 무를 넣어 육개장도 만들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곰탕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몸을 뜨끈하게 보신했습니다. 남편은 장모님이 만든 곰탕보다 제가 만든 곰탕이 더 맛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성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먼저 부모님께 한 그릇씩 가져다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네가 이런 음식도 만들었냐”며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치매가 있으셔서 바깥 거동이 어려우십니다. 입맛이 없어 밥도 얼마 못 드신다고 합니다. 점점 살이 빠지고 허리가 굽어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따뜻한 곰탕을 한 그릇 듬뿍 떠서 드렸더니 맛있다며 밥을 한 공기나 드셨습니다. 아버지가 곰탕을 드시는 모습을 보니 며칠 동안의 노고가 다 달아나는 듯 보람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 곰탕과 고기, 파까지 싸서 전해주었습니다. 친구는 남편과 아들까지 나눠 먹고 덕분에 몸보신했다고 좋아했습니다. 혼자 사는 지인에게도 연락해 나눠주니 요즘 음식 나눠주는 게 흔하지 않은데 잘 먹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바쁘다며 시간이 많이 드는 음식은 잘하지 않았습니다. 곰탕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리고 주변에도 나누어주니 정을 나누는 기쁨이 커졌습니다.
작년 연말, 2026년 계획을 세우며 만난 코치님은 '환대'를 인생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전혀 모르는 사람을 추천받아 부산 여행과 음식 모든 것을 아무 대가 없이 나눈다고 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추어탕과 곰탕을 정성껏 끓여 주변의 환자나 어르신들에게 나눠준다고 합니다. 음식을 나누는 환대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감사를 나누는 아름다운 일입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낡은 곰솥은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자식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당신의 무릎과 시간을 아낌없이 갈아 넣었던 사랑의 유산이었습니다. 이제 그 묵직한 솥을 넘겨받으며, 나는 비로소 어머니가 견뎌온 그 지루하고도 뜨거웠던 정성의 무게를 배웁니다.
내 손으로 고아낸 뽀얀 국물이 누군가의 언 몸을 녹이고, 기력을 잃어가던 아버지의 수저를 들게 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곰탕은 특별한 비법이 필요한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곁에 있는 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이 겨울을 무사히 건너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환대'의 마음이면 충분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뽀얗게 우러난 이 곰탕 한 그릇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시린 생을 따스하게 적셔주는 다정한 사람으로 익어가고 싶습니다.